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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미디액트의 믹싱
전문 오퍼레이터로 자리를 잡은 표용수씨를 만나보았습니다. 인터뷰 당일에도 작업 일정이 빡빡하게 잡혀 있어, 녹음실에서 <송환>의 디지털라이징을 지켜보며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소개에서
미디액트와 다른 회원
여러분께 드리는 조언
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개관 당시부터 스탭들만큼 미디액트에 오래 있었지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어보기는 처음이라, 신선한 느낌!새로운 미디액트의 식구와 인사 나누시고, 앞으로 편하게 함께 작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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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시는 작업은?
푸른영상의 김동원 감독님의 <송환>이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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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것 아니었나?
DV 포맷으로는 완성되었는데, 필름에 맞게 다시 작업중이다. 개봉 일정이 잡혔다. 일을 두 번 하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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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두 번 작업을 하게 되는지?
처음에는 필름 이야기가 없으셔서, 필름에 맞게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다큐멘터리는 관객 저변이 별로 넓지 않아서 필름 생각을 안하고 필름은 염두에만 두고 계셨는데, 완성되고 나서, 작업에 애착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고, 주위의 독려도 있고 해서 필름으로도 가기로 했다.
포맷만 틀리고 같은 작업이라, 다를 건 없다. 필름이면 대부분 모노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작업을 해도 지금 들리는 것과 많이 틀려지기 때문에 실망이 되기도 한다. DV나 35mm 돌비 스테레오를 선호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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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나이는 20대 후반, 28이고, 96년도에 서울영상집단에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해서, <송환>도
이런 계기가 바탕이 되어
시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상계동 올림픽>을 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아서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극영화는 미디액트 생긴 후에 실습도 많이 해보고 작업도 많이 하면서 철새로 있다가 이런 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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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했던 것인가?
서영집에서
연출부에도 있었고, 촬영부에도 있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할 때에도 촬영을 직접 한 것은 아니었지만, 촬영부로 있었고, 그 이후로 서영집에서 연출쪽에도 있었다.
군대 갔다 와서는 <뽀삐> 김지현 감독하고 인연이 되어서, 독립영화 쪽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독립영화다, 다른 영화다, 구분할 생각은 없었는데, 워낙에 아는 사람들이 다 이쪽 사람들이라... 김지현 감독은 충무로에서 조명아카데미인가에서 수업을 같이 들은 적이 있었다. 3주 교육인가 했는데, 하루밖에 안나왔지만, 같이 찍은 사진도 있고, 많이 친해졌다. 같이 작업하면서 보고 배운 것이 많다. 그 사람은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 안하지만, 아주 특별한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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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과 <뽀삐> 외에는 어떤 작업을 했나?
2001년도에 영화학과에 들어가게 되어서, 학교에서 만든 작품들에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전공이 음향인데, 전공자가 워낙 적어서 사람이 부족하다. 독립영화나 학교나 이런 상황은 비슷하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작업을 거의 도맡아 하게 되었다. 작업하면서 보람도 많이 느끼고, 이야기도 많이 하게 되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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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액트에서 작업하면서 부터는?
<미친시간>(서영집, 이마리오 감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빨간눈사람, 이경순 감독), <경계도시> (서영집, 홍형숙 감독)...
홍형숙 감독하고도 친하다. 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부분이 많아서 연락도 잘 안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은 알게 모르게 챙겨주신다.
미디액트에서 한참 배우고 실습하고 할 때,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홍형숙 감독님이 연락을 해주셨다. 작업 할 생각 없냐고. 그 이후로 한다리 한다리 거치고 소문도 나고 해서 <미친 시간>도 하게 되고, <송환> 까지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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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작업 량이 참
많았다. 2003년에 나온 독립 다큐멘터리의
많은 부분을 소화한 것 같다.
그렇게 되었다. 나한테도 큰 공부고, 일이 재미있으니까 하게 되었다.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극영화는 많이 했는데, 빛을 못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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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영화는 어떤 작업들을 했나?
주로 단편이었다. 독립영화는 장편이면 주로 DV인데 나에게 선택권이 별로 없었다. 제작하시는
분 쪽에서 초이스 하는 것이다.
다큐 보다는 극영화가 재미있는 것 같다. 다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촬영분도 워낙 수준이 높고, 다들 잘
하시는 분들이니까.
극영화는 60~70%가 처음 하시는 분들이어서, 내가 도움이 되는 것도 많고,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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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몇 시간이나 하나? 옆에서 보면 상당히 많이 하는 것 같다.
하루 기준으로 14시간 이상 작업한다. 안 그러면 작업의 성과가 안보인다. 이야기하고 설치하고 하면 시간이 후딱 가고, 조금 작업하다보면 점심 먹고... 발동이 걸려야 작업이 좀 되는데, 지금은 어린 나이에 몸이 좀 맛이 가서, 조금 줄이려고 한다.
배울 때는 그것도 짧은 시간이었는데, 새벽 작업도 워낙 많이 하고 해서 새벽 작업을 줄이고 9시간 정도로 맞추었으면 한다. 2년 전 까지만 해도 날라다녔는데, 지금은 힘든 것 같다.
이상하게 시즌이 있어서 몰아치기로 일을 많이 하게 된다.
2월 초만 해도 찾는 사람이 별로 없고, 가끔 연락 와서 미팅만 하고 그랬는데, 2월 둘째 주 부터는 갑자기 많아져서 2월 말 까지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이 있다.
그게 안좋다는데... 스탠리큐브릭이 그러다 죽었다는데... 영화 끝나고 잠깐 일이 없을 때, 다 태우듯이, 소진시키듯이 작업하다 죽었다고,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렇게 죽긴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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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들게 일하는 것 같다.
그만큼 하면 얻는 게 있다. 지금도 일하는 게 아니라 공부한다고 생각한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프로를 원하시겠지만... 처음부터 내 생각을 말씀드리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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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닌다고 알고 있는데, 졸업은?
졸업이 1년 남았다. 1주일에 반은 학교, 반은 녹음실... 방학 때는 계속 녹음실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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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액트에 어떻게 오게 되었나?
처음에 독립영화 단체에서 미디어센터에 대해서 소장님이 이야기하시는 걸 많이 들어왔는데, 군대 갔다 오니 이게 현실화가 되어 있었다. 말로만 듣던 것이 현실화 되는구나... 전혀 모르다가 오게 된 것은 아닌 셈이다. 생기자마자 음향 쪽에 워낙 관심이 있어서, 3개월 짜리였나, 수업(2002년 6월1일~8월 말까지 있었던 [제작자를 위한 사운드 특강] 1기-편집자 주)을 들었다. 실제로는 4개월 쯤 한 것 같은데, 듣다가 센터 스탭들이랑 안면도 트고, 아는 분들도 있고...
스탭들이 원래 독립영화 쪽에 있었고, 불편하지 않으니까 계속 있을 수 있었다. 나도 스탭들도 모두 유하니까.
약간 미안하긴 했다. 전혀 모르는 분들도 아니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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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니? 어떤 지점에서인가?
고영재 실장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를 꺼냈는데, 여기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곳에서 실습 많이 하고 좀 큰 곳으로 나가려는 생각도 있었다. 딱히 충무로는 아니더라도, 큰 작품을 하겠다는 생각.
먼저 내 능력을 업그레이드 하려고 끊임없이 일을 했다.
아무래도 미디액트의 개념이 퍼블릭액세스니까, 나도 정회원 교육을 받고 느낀 점이 있었다면, 이야기를 먼저 꺼내서, 현실적인 거, 조교 역할이나 수강생들을 가르친다거나,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했는데, 음향 전공 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내공을 쌓는다는 생각만 했다는 점이다.
도와드리지는 못하고... 왜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냐면, 사람들이 잠을 못자고, 피부도 거칠어 보이고... 차장님이나 정식 씨 보면 그냥 달린다. 저 속도를 좀 늦춰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회원분들이 아시려나 모르겠다. 처음엔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길게 보고 가는 단체인데, 구성원들이 다 함께 끌어가야 하는데... 지금은 초기지만, 육체적으로 힘들게 가는 것 같아서 안스러웠다. 그런 면을 도와드렸어야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고...
고백성사 같다. 고백성사 안한지 오래 되었는데... 가라 신자다.
...
이야기가 자유롭게 확장된다.
음향, 독립영화...
처음에 음향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명 쪽에도 있었고 촬영 쪽에도 있었지만, 음향이 워낙 열악하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여기 수업 할 때 처음 냈던 지원서에서도 그렇게 썼다. 음향 쪽이 필요한 것 같다고.
그랬더니 수강생으로
뽑아 주셨다.
일을 하다 보니까, 독립 다큐멘터리도 있고 극영화도 있는데, 극영화 쪽에서는 사실 독립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경계가 모호하다. 극영화 쪽 일을 많이 하게 되니까, 그쪽 감독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 사견일 수도 있지만, 독립영화 쪽 마인드랑은 조금 다르기도 하다.
그런 점 때문에 접근하기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립영화 쪽도 좋은 환경에서 일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음향에 신경도 쓰고, 좋은 기자재도 쓰고 하면서. 돈이야,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되고.
...<송환>을
모니터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들에게 이 체제 안에서 존재하면서 생길 수 밖에 없었던 이상스러움이 있다. 기분이 나쁘다. 개인적으로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해서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상계동 올림픽을 봤을 때 충격이었다. 동숭시네마텍에서 상영을 했는데, 이틀 째 종로구청에서 철거를 시켰다. 나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았지, 독립영화가 뭔지는 몰랐다. VJ는 알았는데. 영국의 ‘채널4’나 프랑스의 ‘아르떼', 미국 독립영화 쪽 이야기가 스크린이나 로드쇼에서 나오니까 조금 들을 수 있었던 것 뿐이었다. 가서 보고 알게 되었다. 그 때 깜짝 놀랐다. “아! 속고 살았다.” 너무 불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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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탭들은 농담처럼 녹음실이 용수씨를 버리고 있다고들 한다. 처음에 왔을 때와 모습도 많이 달라진 것 같고. (개관 당시, 내부 시설 공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녹음실은, 새 기자재, 가구, 마감재가 뿜어내는 냄새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 편집자 주)
나는 인간 스폰지다. 여기 있는 공기청정기도 필요 없지 않을까. 이 곳의 독기를 내가 다 마셨다. (웃음) ‘새집이 사람을 잡는다.’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섬뜩했다. 내가 내성이 강해서 망정이지 애도 못 낳고 그렇게 될 뻔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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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은 참 죄송하게 생각한다. 2년 사이에 5년은 늙은 것 같은데...
쌓인 게 많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웃음) 그래도 지금은 냄새도 안나고 좋지 않나. 녹음실 다니면서 그렇게 되었냐는 이야기를 들어도 사람들에게 말은 안했다.
그런데, 얻은 게 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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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미디액트에서 하게 되는 역할은
어떤 것일까? 개인적으로
하고자 하는 일은?
멀게 보면, 내년이면 수강생들이나 회원들이 또 많아지고 하니까, 능력은 안되지만, 되는 한도 내에서, 배운 것을 조금이라도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여기서 많이 배웠으니까.
나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독점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공간이 한정되어 있고, 음향을 듣는 능력이 생기려면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하는 것이 좋으니까, 다른 분들도 쓰고 싶은 생각이 많을 텐데, 다 배우고 연습하기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해서 계속 내가 작업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내년이면 다른 분이 이 공간에서 많이 작업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여기에 맞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일도 계속 하고 싶고,
더 큰 영화도 믹싱해 보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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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액트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별로 없다. 솔직히 불안한 점도 있다. 이렇게 달려가다가는 한명씩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국장님은 아침 형 인간인 것 같던데...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되면 좋지 않을까. 건강이 최고다.
나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몸 관리를 잘못하면, 작품은 나를 거쳐서 나가는 것이라, 컨디션이 안되는 날이면 작품의 질이 안좋게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무릎에 통증이 좀 있어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 반년동안 새벽에만 작업하다가 몸이 많이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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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센터 스탭들이 그렇게 무리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고도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크다.
처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다. 회원 분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같이 쓰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문제가 있더라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 안하면 서로 스트레스 안 받을텐데.
원칙은 습관인 것 같다. 처음에는 나도 여기 원칙 때문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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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분들께도 한마디 부탁한다.
처음 해보시는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많이들 모르신다.
회원 교육 받고 나서 반성 많이 했다. 항상 오퍼레이터로 했기 때문에 막상 교육을 받은 지 얼마 안되는데. 참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안들으면 진짜 안되는 내용이다. 꼭 회원 교육을 받으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받고 나서 마인드를 가지고 나가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분들과 함께 쓰는 장비를 싸게 공급받는 조건에 있는 것이니까.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작업 할수록 판이 더 깨끗해지고, 다음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도움이 많이 될 것 이다. 아무래도 영화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관계를 맺어나가는데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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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기대되는 것이
있다면?
개인들이 하는 영화나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나, 개념이 모호하지만, 돈 벌려고 하는 영화가 아닌 경우에,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포스터 같은 것도 마찬가지겠고. 지금 믹싱 하다 보면 예전엔 어떻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프리미어로 다 했다고 하던데...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이 기술 때문에 제약받는 것을 막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5.1 채널 같은 것도 되고, 교육 과정도 생기고, 요구가 많아져서 미디액트에서 교육 받은 인력도 많이 배출되고 했으면 좋겠다.
내가 들었던 수업이 2기 정도 하고 끝났는데, 그 땐 동시녹음 쪽도 배웠다.
동시녹음이 정말 중요한데, 믹싱은 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동시녹음을 잘 하면 훨씬 수준 높고 편하게 질을 높일 수 있다. 믹싱으로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돈도 많이 들고.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네트워킹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작업하는 분이 혼자 찾을 몫이기도 하지만,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으니까, 뒷 세대, 젊은 분들, 미디어센터를 모르셨던 분들, 필요성을 체감 못했던 분들이 강좌를 수강하고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퍼블릭액세스 개념이 많이 퍼져나갔으면 한다. 그게 여기 목적이기도 하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잘 했으면 좋겠다. 미디어 환경이 개선되고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이제 TV에서 한 채널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좋겠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가 법정까지 간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자기네들만의 마인드를 좀 버렸으면 좋겠다. 시청자들이 보면 불편해 할 거라고 보여주지도 않고 제한하는 것 같은 마인드 말이다.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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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기대는 없는가? 특히나 녹음실 전문 오퍼레이터라는 것으로 상황이 바뀌고 나서. 혹은 우려되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여기서 일하면서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돈 많이 벌겠다고. 절대 안 그렇다. 한 면만 보면서 하는 이야기인거 같다. 그런 이야기 들으면 섭섭하다. 내가 뭐 큰 대의를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마인드를 모르고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계속 그런 마인드로 가지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는데...
처음 돈을 받고 작업을 한 것이 <경계도시>이다. 제작자 분이 돈을 주시는 데, 받아도 되나갈등을 많이 했다. “형 못 받겠어요” 하니까, 그럼 “만원 빼고 줄게” 하면서 억지로 주시더라. 그 이후에 이성진 선생님이랑 고영재 실장님에게 상의를 드렸다. 받아도 될까, 얼마나 받아도 될까 의논을 하고 가격을 정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고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고, 다달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심적인 안정감을 준다. 미디액트 구성원으로서 느껴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몸을 건사해야 하고 독립도 해야 하고 생활을 하기 위해 이정도 받지만, 그것이 위협받지 않은 한에서는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정말 많이 가격이 내려갔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 제도가 정해지고 나서 더 부담이 준 것 같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작업하시는 분들은 비용을 내는 것 자체가 아까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저 사람 입에 풀칠해주는 거’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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