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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제 86 호

인터뷰
제 3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서울영상집단을 만나다

 

[ACT! 86호 인터뷰 2013.11.25]

릴레이 안부인사 "밥은 먹고 다니니?" (1)
-  제 3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서울영상집단을 만나다
 
김주현, 현 (ACT! 편집위원회) 
 

[편집자 주] ACT!에서는 독립 다큐 제작집단 탐방 시리즈를 새로 시작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국의 독립 다큐를 꿋꿋이 이끌어가고 있는 이들이 요즘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하고 싶은 작품은 즐거이 만들며 살고 있는지, 한국의 미디어 활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들의 최근 근황을 전합니다.

  그 첫 번째로, 2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서울영상집단(이하 ‘서영집’)을 방문합니다. 서울영상집단은, 80년대 후반부터 보급된 비디오의 사회적 역할에 일찌감치 눈 뜬 대학가에서 각자 캠코더를 들고 활동하던 사람들의 역량이 총 집결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찾아 떠났지만, 서영집의 깃발이 내려지지 않은 데는 오랫동안 홀로 사무실을 지켰던 공미연 감독의 은근한 끈기가 있었습니다. 지금 서영집은 공미연 감독과 후배 김청승 감독 둘이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영상집단 사무실(사진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깨끗했다)
 
 
  서울영상집단에 처음 갔다. 약간 놀란 두 가지 중 하나는, 사무실이 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깨끗하다는 것(영상 제작 사무실은 늘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다른 하나는 서영집의 대표 얼굴 공미연 감독이 심한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었다는데, 몸 돌보지 않고 달려온 결과 몸이 나 좀 봐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덕분에 공 감독은 술을 끊고 매일 밤 10시면 꼬박꼬박 퇴근해서 쉰다고 했다. 밤 10시라니 그것도 쉬는 건가 싶지만, 지금까지 혼자서 서영집의 깃발을 치켜들고 있는 일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잘 알다시피, 후배 김청승 감독이 서영집의 새로운 대표 얼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주현: 액트에서 영상제작 단체 릴레이 인터뷰 첫 번째다. 잘 지내시는지, 작업은 어떻게 하시며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개인적으로도 궁금하다.
 
현: 서영집을 제일 처음 하는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영상집단 중에서 제일 유명한가? 푸른영상을 제치고?^^
 
김청승: (우리 서영집은) 매니아 층이 있죠. (다들 웃음)
 
주현: 순서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진 않았던 거 같아요. 
 
공미연: 으흠~ 그런 걸 얘기하는 게 좋은 건가? (웃음)
 
현: 별 의미 없이? (웃음)
 
주현: 하지만 저는 서영집이 눈에 딱 들어오더라구요.
 
김청승: 대충 알 거 같아요. 저희를 스타트로 해서 푸른영상으로 방점을 찍는, 그런 식이지 않을까 싶네요.
 
공미연: 미끼? (웃음)
 
김청승: 일단 그림은 우리가 나으니까, 푸른영상보다. (다들 웃음)
 
주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공미연: 저는 서울영상집단에 97년에 들어왔어요. 그러고 나서…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웃음) 아무튼 지금까지 있어요. 외도 없이…
 
김청승: 몇 년째죠?
 
공미연: 16년인가?
 
현: 그럼 대표는 언제 되신 거예요?
 
공미연: 저흰 대표제도 없어요. 홍형숙 감독님 있을 때 대표 제도가 있긴 했는데, 그 이후로는 대표 없어요. 그냥 회의 주재자, 돌아가면서 하는 그런 건 있죠.
 
현: 스물여섯, 일곱에 입단하셨네요… 청춘을 바쳤구나.
 
공미연: 그래요. 몸이 이제 갔지…
 
현: 서울영상집단의 산 증인, 청춘을 바치다…. 언제 세워졌죠, 서영집이?
 
김청승: 90년. 자료조사를 안 하고 오셨군요? (웃음)
 
현: 했어요, 했는데 잊어버렸어요. (웃음)
 
주현: 어떻게 들어오시게 된 거예요?
 
공미연: 워낙 다큐를 하고 싶었고, 당시에 제가 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서 이런 독립영화들이 상영이 좀 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낮은 목소리>(변영주, 1995~)라든지, 홍형숙 감독님이 만든 <두밀리-새로운 학교가 열린다>(홍형숙, 1995) 이런 작품들을 학교에서 봤죠.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졸업을 하고 1년 정도는 영화 공부하는 데 돌아다니고 공부를 하다가, 서영집에서 <변방에서 중심으로>(홍형숙, 1997)란 작품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같이 공부하는 언니랑 문을 두드려봤거든요. 그때 이 작품 스텝은 이미 다 뽑은 상태라, 그럼 서영집 멤버로 들어와라 해서 들어갔죠. 멤버로서 이 작품을 같이 하긴 했어요. 
 
주현: 그때 같이 계셨던 분들이 누구였어요?
 
공미연: 홍형숙 감독님이랑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홍효숙 언니. 이안숙. 이현정, 표용수도 있었어요.
 
주현: 원래 학교 다니실 때 전공은?
 
공미연: 물리학과였어요.
 
주현: 그럼 그냥 영화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학생 운동을 하신 거예요?
 
공미연: 활동을 했죠. 학생회 일도 하고 풍물도 치고. 전 딴따라가 될 줄 알았어요. (웃음) 그때 가정에 비디오, 캠코더가 많이 보급되던 시기라, 우리 집엔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 거 빌려다가 학생회 일할 때 써보기도 하고 혼자 이렇게 저렇게 만들어보면서, 세상을 변하게 하려면 다큐멘터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느낌을 자연스럽게 많이 받았죠.
 
▲서울영상집단 공미연 감독
 
주현: 김청승 감독님은?
 
김청승: 저는 2011년에 <마이 스윗 홈>이라는 다큐 만들고 나서, 다큐를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서영집 찾아와서 같이 하고 있어요.
 
현: (여기 와서) 제대로 하시게 됐나요? 
 
공미연: 푸른영상(주. 김동원 감독이 만든 다큐제작집단) 가고 싶었잖아요.
 
김청승: 아 그렇죠. (웃음) 맨 처음 이거(<마이 스윗 홈>) 만들 때는 가끔 피드백 받으러 문감독님 만나러 푸른영상에 갔었죠. 문감독님이 서영집 얘기를 몇 번 했었고. 당시 홍제동 살 때였는데, 검색해보니까 5분 거리더라구요.
 
공미연: (서영집이) 잠시 홍제동에 있을 때가 있었어요, 잠시.
 
김청승: 문감독님이 항상 얘기했었어요. 서울영상집단이 훨씬 더 너에게 맞다. 뭔가 더 세련된 스타일이라든가… ^^
 
공미연: 그건 자기가 지금 주석을 붙이고 있는 겁니까? ^^
 
김청승: 아무튼 그렇게 해서... (들어오게 됐어요.)
 
주현: 지금 후회는 없으신가요?^^
 
현: 푸른영상으로 갈 걸, 하는… ^^
 
김청승: 푸른영상이 여기보다 활동비를 더 많이 주죠.^^ 그렇긴 한데, 좋은 걸 수도 있고 나쁜 걸 수도 있지만, 여긴 어쨌든 선배들이 많이 없으니까. 그런 면에선 좀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고.
 
주현: 김청승 감독님이 들어오셨을 때 서영집에 계셨던 분이…
 
공미연: 저 혼자 있었어요. 워낙 단체가 오래 되긴 했는데, (제가 들어온 이후) 십 수년이 흘렀잖아요. 그 사이에 사람들이 자기 살 길 찾아서 많이 나가거나 혹은 따로 작업하려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 혼자 있었던 기간이 있었죠. 물론 <전장에서 나는>(공미연, 2007)이나 <술자리다큐>(공미연, 2011) 같은 작업을 할 때 같이 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스텝 개념이었지 서영집 멤버는 아니었죠. 저도 꼭 멤버가 되라고는 강요하지 못하겠더라구요. 단체 생활이란 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힘을 받긴 하지만, 보장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멤버로는 혼자 있는 시기가 좀 있었어요. 김청승 감독이 서영집 멤버로 활동을 하고 싶단 말을 했던 무렵에는 접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어요. 들어온다기에 접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다 해주지는 못한다, 그런 얘기를 다 했죠. 그런데 일단 해보자고 하더라구요.
 
▲서울영상집단 김청승 감독
 
김청승:  혼자 하나 만들어보니까 너무 힘들어가지고, 단체 생활을 하면서 배우고 싶어서.
현: 문감독님이 추천한 것도 있겠지만, 와보니까 선배 혼자 있는데 선뜻 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김청승: 일단 제가 장비가 없으니까….
 
현: 그런 실용적인 이유로…^^
 
주현: 서영집 장비는 좋아 보였나요?^^
 
김청승: 전 아예 없었으니까.^^ 다큐 만들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매 순간 이 컷을 붙이냐 마냐, 구성을 어떻게 짤 거냐, 혼자 늘 고민해야 되니까. 단 한 명이라도 옆에 얘기 나눌 사람이 있으면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현: 다큐 만드는 XX도 서영집에 오고 싶어해요. 오면 받아주실 건가요?
 
일동: 오~~
 
현: 아니, 이 친구는 푸른영상에도 가고 싶어해요.
 
공미연: 우린 역시 액수에서 밀리겠지. (한숨~)
 
김청승: 늘 그런 게 있어요. 다큐 하고 싶은 사람들이 푸른영상에 찾아가. 찾아가서, 스탭하다가, 문감독이 이 친구가 좀 마음에 안 들면 은근슬쩍 서영집 소개하고… 
 
공미연: 하하하, 아 그런 거구나, 맞아.
 
주현: 문감독님이 (김청승 감독님이) 마음에 안 드셨던 거 아녜요?^^ 서영집 역사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서울영상집단이 한국독립영화 역사에서 축인 거잖아요. 변화의 분기점들이 있었을 거 같거든요.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얘기해주세요.
 
공미연: 김청승 감독이 계속 얘기하는 게, 제3의 전성기 운운을 계속 하고 있거든요. (서영집은 지금이) 제 3의 전성기다, 하고요. 90년부터 95년까지는 이때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들었어요. 이론하는 분들도 있었고.
 
주현: 남인영 선생님도 있었죠.
 
공미연: 그쵸, 이순진, <불안> 만든 민환기 교수도 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론 파트랑 제작 파트랑 나눠가지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작업도 하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두밀리-새로운 학교가 열린다>(홍형숙, 1995) 요 시점부터는 제작으로 많이 갔던 거 같아요. 저도 들은 얘기지만. 그리고 이때도 홍형숙 감독이  ‘두밀리’ 마치고 서영집의 깃발을 혼자서 들고 저 같은 고민을 좀 했던 모양이더라구요. 사무실 없애야 되나 말아야 되나. 왜냐면 다른 사람들 다 유학 가고…
 
주현: 그럼 이때 홍형숙 감독님 혼자 계셨던 거예요?
 
공미연: (‘두밀리’) 마치고 나서. 정확히 얘기하자면 홍형숙 감독하고 홍효숙 언니, 두 사람이 깃발을 들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서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 작업하면서 스탭들 모으고 다시 탄력을 좀 받은 거 같더라구요. 요 때 제가 딱 들어간 거잖아요. 이때도 사람이 되게 많았어요, 스탭들. 멤버는 저하고, 저랑 같이 들어갔던 언니랑, 네 명 정도? 정식 멤버는. 그러다가 97년 작업이 완성되고 나서 스탭들 일부가 서영집 활동을 하겠다 했죠. 그래서 이안숙, 이현정 감독 두 사람이 남게 되고, 표용수는 그때 군대 갔나 학교 갔나, 그랬고요. 98년도쯤에 강석필, 이마리오 이런 사람들이 들어왔죠. 
  그러다가 강석필 감독과 홍형숙 감독이2001년도에 <경계도시>(홍형숙, 2002) 만든다고 독일로 가요. 그 사이에 우리 신인 멤버들이 살림도 꾸려나가고 모든 걸 다 해야 하는 상황이 됐죠. 제가 처음 들어갔을 때는 활동비 개념도 없고 밥도 내 돈 내고 사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되게 열악했죠. 영진위 제작 지원이라든가 펀드 받을 데도 전혀 없었고. 그래서 해외 펀드 신청해야 되나, 어떻게 수익사업을 해야 되나, 그러고 있는 상황이었죠. 이마리오 같은 경우는 어쨌든 뭔가 해보자, 활동비 지급해야 한다, 그럼 돈을 벌어야 하지 않냐, 하고 적극적으로 말했죠. 마침 각자 역량도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돼서 그때 수익사업을 적극적으로 했던 거 같아요. 
 
현: 어떤 일을 했어요?
 
공미연: 탈북자들 대상으로 하는 교육용 영상 굵직한 거 맡게 된 거예요. 그 작업을 하면서 활동비 개념도 생기고 50만 원 정도 활동비를 줄 수도 있게 됐죠. 각자 하고 싶었던 작업을 내고 같이 작업하게 되었고요. 마리오 작업에 제가 스탭으로 붙고, 누구는 프로듀서 하고, 이런 식으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면서 수익사업도 하게 되는 상황이 됐어요. 그 전에는 이렇게 할 만한 사람도 없었던 게, 간극이 컸던 거죠. 홍 감독 같은 경우에는 작업을 오랫동안 계속했던 사람인데 같이 모여 있던 사람들이 다 초짜였던 거예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카메라를 다루게 되고 기획을 좀 더 잘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런 시간을 겪어내는 게 힘들긴 했는데, 그 시간이 넘어가니까 수익사업도 하게 되고 그랬죠. 광고 같은 걸 한 건 아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시민단체들이 활성화됐잖아요. 그런 단체들이 무슨 기록을 남기고 싶다, 무슨 행사 때 영상을 틀고 싶다, 이런 주문이 많았죠.
  당시에는 홍 감독이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는데, <경계도시> 만들고 나서 대학원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쪽에서 졸업작품하면서 서영집을 정리하겠다고 했어요. 홍감독 자신은 늘 (서영집의) 객원감독이다 하고 말하지만, 마음은 그래도 실질적으로 활동의 장은 완전히 달라지게 돼요. <경계도시2>(홍형숙, 2009)는 아예 다른 제작단체에서 만들어지는 상황이 된 거죠. 그 사이에 다른 작품들이 사무실에서 만들어졌고, 작업을 마치자 마리오는 서울에 살기 싫다, 강릉에서 지역영화인이 되고 싶다고 해서 그럼 가라 했죠.^^ 그리고 현정 언니는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이현정, 2006) 마치고 나서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오래 같이 했던 이안숙 감독은 다른 일자리가 들어와서 해보겠다, 이렇게 사람들이 다 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약간 정체기가 있었죠. 제가 혼자서 뭘 할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제가 뭐 사람들 막 끌어모아 하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오면 오나보나 가면 가나보다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서 근근이 제 작업을 진행해나가는 상황이었고, 그러면서 혼자 있게 되니까 돈이 없잖아, 만들 수도 없고. 그러니까 활동비가 없는 거지. 그럴 때 청승 감독이 들어왔고, 그러면 우리도 뭘 해보자, 멤버를 더 받는다거나. 작년 초 여기로 이사 오면서 멤버를 두 사람 더 받았어요.  네 사람이 된 거지.
 
주현: 그럼 서영집 멤버는 지금 네 사람?
 
공미연: 여기가 널널해 보이지만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해야 하는 일이 굉장히 많거든요. 다들 단편 정도는 해봤지만, 다른 사람들과 하면 지치는 일들이 많잖아요, 그런 부대낌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한 친구는 좀 쉬겠다 해서 쉬고 있고, 또 한 친구는 다른 일과 병행하고 있어서 비상근으로 있고. 늘 상근해서 작업하는 사람은 나와 청승 감독, 두 사람이에요.
 
주현: <전장에서 나는>(2007) 나오고 <술자리다큐>(2011) 나오기까지 기간이 좀 길잖아요. 이 기간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공미연: 마리오가 2006년 말인가 초에 서영집을 떠났다가 제가 <전장에서 나는> 만든 후에 다시 들어왔어요. 그때 한독협 10주년 기념 영화를 한독협에서 하자고 했었는데, 마리오가 연출을 맡은 거죠. 그래서 2008년도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만들고 마리오는 또 가버렸어요.^^ 이 작품에서 저도 메인촬영을 하긴 했는데, <전장에서 나는> 만들고 난 후라 풍물패 따라다니면서 많이 놀았죠. 그러다 2009년에 <술자리다큐> 팀이 촬영을 시작했어요. 2010년에 마치긴 했는데, 혼자 있다 보니까 진행이 지지부진해서 완성이 늦어졌어요. 안 되겠다 싶어 2011년도에 완성했죠. 사실 2010년에는 개인적으로 상황이 안 좋아서 소강상태가 있기도 했고요.
 
주현: 듣고 보니까 공백이 큰 게 아니라 계속 작업을 하셨네요.
 
공미연: 그렇죠. <술자리다큐>를 만들기 전에 강릉에 가서 마리오를 만났어요. 제가 계속 혼자 있었잖아요. 마리오한테 우리 서영집 어떻게 해야 되냐, 그랬더니 저한테 악담^^을 하는 거예요. 너는 빠져나올 시기를 못 잡았다, 이제 빼도박도 못 한다, 그러면서요. 돌아오면서 자기가 혼자 룰루랄라 잘 산다고 나를 이렇게 버릴 수가 있나, 내가 서영집 깃발을 끝까지 들고 있겠다, 그랬죠.^^ 그러고 나서 인디다큐페스티발 신작전 프로그래머를 하면서 청승 감독이나 호빈 감독 작품 같이 보고 얘기하면서 옛날처럼 사람들이 모이고 하는 계기는 됐던 거 같아요. 
 
주현: 사무실도 계속 이어져왔던 거죠?
 
공미연: 그렇죠. 사무실이 없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97년도에 들어갔을 때 사무실이 계동 현대본사 뒤쪽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2011년까지 있었죠. 거기 한 13년 정도 있었던 거예요. 한 군데에서만. 그러니까 짐이 너무 많은 거예요. 작업 하나 하면 이만큼 쌓이잖아요. 자료도 엄청나게 쌓이고. 짐 옮기는 데만 한 트럭이었는데, (이사할 때) 짐을 잘 싸가지고 홍 감독 네 집으로 보냈지. 거기 창고가 있다 해서.^^ 그쪽으로 많이 넘기고 지금은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있어요. 장소가 좁으니까.
 
현: 현재는 다른 창고 같은 건 없고 여기가 전부예요?
 
공미연: 그렇죠.
 
주현: 홍형숙 감독님 집에는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거예요?
 
공미연: 박스에 다 넣어서 있어요.
 
주현: 역사에 비해서 자료가 없는 거 같아요.
 
공미연: 그니까요. 계동 사무실 한쪽 벽면 전체가 VHS 테이프였어요. 그게 다 옛날 다큐멘터리였어요, 우리가 잘 못 본, 출시되지 않은 것들. 선배들이 카피를 다 해놓은 거예요. 지금은 극장에 다시 개봉하고 있는 것, 영화제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 거의 다 있었어, 진짜.
 
김청승: 다 어디 갔어요?
 
공미연: VHS였기 때문에 다 보냈지. 열 몇 박스를 보냈다니까. VHS 데크도 지금 안 돌아가.
 
주현: 그 당시에 엄청난 선배들도 많았는데, 지금은 연락을 하고 지내는지요? 도움 같은 걸 받는지?
 
공미연: 제가 직접 만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진 않지만, 제가 알고 있는 분들은 서영집 후원회원으로 계시거나 하는 분들. 영화제에서 계속 만나기도 하니까. 제가 먼저 특별히 뭘 해달라 이렇게 말하는 성격은 못 돼서. 만나면 연락 좀 하라거나 작품 나오면 알려달라거나 하는 얘기를 듣고는 있으나…^^ 
 
▲책장에는 서울영상집단의 작품들이 꽂혀있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건 묻지 말자....
 
현: 대단하시네요. 오랫동안 혼자서 이끌어오셨다는 게. 어쨌든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월세는 꼬박꼬박 나갔을 거 아녜요?
 
공미연: 그렇죠. 월세 부담이 되게 컸죠. 그나마 여기 같이 있었던 멤버들이, 자기들은 다 떠나가니까, 제가 혼자 있게 된 시기가 갑자기 온 거였거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모여가지고 그럼 우리 후원회원 제도를 만들자고.
 
주현: 그때 후원회원이 생긴 거군요.
 
공미연: 네. 전에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후원회원 제도를 만들자는 얘기는 있었는데, 후원회원한테 연락하는 거나 그런 게 다 일이잖아요. 그럴 여력이 없었죠. 그래서 미루고 있다가 나 혼자 남으니까, 떠나기 전에 이거만은 꼭 해놓고 나가자고 한 거죠. 친구들 멤버들 해서 40명 정도가 초반에 있었는데, 지금도 그 정도예요. 멤버들이 바뀌기도 하고 후원회원도 중간에 끊기기도 하고 그러지만 지금도 40만원 정도는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편인 거죠. 그래서 사무실 비용을 충당하고. 계동 사무실은 월세였는데, 여기는 전세로 돌렸어요. 
 
주현: 그럼 후원회비로 사무실 유지하고…
 
공미연: 이거저거 따지면 좀 부족하긴 하죠. 그래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수익사업을 해요. 수익사업을 많이는 안 하지만 기본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는 해야겠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제작지원을 많이 신청하고 그 당락에 기분이 엇갈리는 거 같긴 해요. 개인적으로 돈을 벌려면 교육을 한다든가, 알바를 한다든가 하고. 늘 술자리다큐하긴 한데, 기본적으로 사무실이 유지되는 규모 정도로는 하는 거 같아요.
 
김청승: 어차피 부양 가족이 있는 건 아니니까 각자의 생활을 최소화하는 거죠. 어차피 저흰 대부분의 생활이 작업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누굴 만난다거나 따로 돈 쓸 일이 없는 거죠.
 
공미연: 이 사람은 사회적이지 않아.^^
 
현: 연애 같은 건 안 하시나요?^^
 
공미연: 이 사람은 사회랑 전혀 상관 없이 살고 있어.^^
 
김청승: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 먹고 자고…
 
공미연: 안 좋아, 안 좋아.
 
현: 작품 만드는 데 올인하시는군요.
 
주현: 청승 감독님 집은 어디?
 
김청승: 저도 이 근처. 사무실 옮길 때 같이 옮겼어요. 교통비도 아까우니까.
 
현: 그럼 좀 더 가면 더 아끼기 위해 여기 사무실서 먹고 자고 하겠네요?
 
공미연: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작업실과 집은 따로 있어야 할 거 같긴 해요. 
 
김청승: 푸른영상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기본적으로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니까. 밥을 먹어도 찬거리를 한꺼번에 사면 돈이 그만큼 세이브되는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제가 보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고. 장래를 대비해서 적금을 든다든가 그런 건 아니니까. 실생활에 필요한 돈이 한 달에 그렇게 많은 건 아니잖아요.
 
현: 그래도 영화를 만들면 후반작업이라든가 돈이 무시 못하게 나가지 않아요?
 
김청승: 그래서 수익사업을 큰 걸 한다거나 제작지원을 받아 목돈이 생기면 그 돈을 대부분 장비에 투자하죠. 기본적인 장비를 가지고 있으면 사실 그때그때 필요한 돈들은 간단한 진행비 정도니까.
 
공미연: 돈 많이 드는데…^^
 
김청승: 그렇긴 하죠.
 
공미연: 저희가 지금 <자전거, 도시>와 <노동감상>을 두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잖아요. 동시에 한다는 게 저희 사무실 상황에서 사실 말이 안 되거든요.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하지만 그게 가능한 거는 각 작품이 모두 제작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걸로 운영을 하고 있는 거고, 그나마 그게 있으니까 사무실 운영 전반적인 비용이 세이브될 수 있는 거죠.
 
김청승: 얘기가 자꾸 궁상맞게 흘러가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린 충분히 놀 거 놀고 쉴 거 쉬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공미연: 안 쉬어요, 쟤는 좀.
 
김청승: 저는 쉬어요.
 
주현: 일주일 생활 패턴이 어떻게  되세요? 촬영을 며칠 나간다거나…
 
김청승: 그건 그때그때 다르죠. 제 작업(<노동감상>) 같은 경우는 촬영이 다 끝난 단계니까. 지금은 촬영 나갈 일이 별로 없고.
 
공미연: 지금은 준비 단계. 녹취 같은 거.
 
김청승: 촬영을 해도 흐름이 있어서 매일 촬영해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거의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나갈 때도 있고, 유동적이죠.
 
주현: 지금 작업하시는 거 간단하게 소개 좀 해주세요.
 
김청승: <노동감상>은요, 2011년 한진 희망버스 출발할 때 미디어팀이 꾸려졌거든요. 푸른영상의 김준호 감독이 이전 용산이나 대추리 때 경험을 바탕으로 미디어팀을 꾸렸죠. 맨 처음 연분홍치마라든가 <강, 원래 프로젝트> 팀이라든지 여러 미디어활동가들이 같이 하다가 1차, 2차, 3차 흘러가면서 구성원들이 정리가 되면서 속보성 영상을 만드는 것에서 장편 작업으로 목적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공미연 감독님하고 <산다> 만든 김미례 감독 두 분이 PD로 있고 저하고 푸른영상 김준호 감독이 공동연출을 해서 2011년부터 3년째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공미연: <자전거, 도시>는 자전거가 도시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질문으로 해서 자전거 타는 사람, 그리고 도시는 어떻게 개발이 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쫓아서 다니고 있죠.
 
김청승: 그러니까 <술자리다큐>에 이어서 공미연 취미생활 다큐 두 번째예요. (다들 폭소) 3편이 아마 야구 이야기가 될 거예요. (주. 공미연 감독은 애주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장에서 나는> 관점과 약간 비슷하게 얘기가 풀어질 거 같아요.
 
주현: 어떤 관점에서요? <전장에서 나는> 봤거든요. 상상이 잘 안 되네요.
 
김청승: 음… 한국은 지금 전쟁 상태는 아니잖아요. 휴전 상태라고는 하는데. 전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전쟁 상황으로 인한 불합리한 지점이랄까,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전쟁의 흔적들? (<전장에서 나는>은) 그런 게 담겨져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죠. <전장에서 나는>에서 민방위훈련 때의 사이렌 장면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장면이거든요. 일상적으로 차가 왔다갔다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차가 멈춰 서잖아요. 그 순간 전쟁이 되는 거잖아. 훈련이긴 하지만. 그런 것처럼 <자전거, 도시>도 일상에 담겨 있는 어떤…음…
 
공미연: 아, 됐어요.
 
김청승: 우린 피칭하면 안 될 거 같애. (다들 웃음)
 
주현: 서영집 작품을 보면 사회적 투쟁이나 그런 굵직굵직한 얘기들을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술자리다큐>를 아직 못봤지만 제목이나 소재에서 느껴지는 것은, 서영집이 그동안 다뤘던 소재들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전거, 도시>도 그렇고. 다른 건지, 아니면 그런 소재를 가지고 사회적인 얘기를 하시는 건지.
 
공미연: 나와 봐야 알 거 같긴 한데, <전장에서 나는>도 사실은 반전영화라고 하기엔 애매하거든요. 모든 사람들은 다 전쟁에 반대하는데 우린 늘 전장에 있으니까. 왜 그러냐, 일상으로부터 전장으로 나아가는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만들게 됐어요. 거기에 저항하는 것은 개개인의 일상에서부터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걸 인지하는 거, 이 상황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거 혹은 우리 일상에서부터 전장에서 나아가고 있다는 거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식만이라도. <자전거, 도시> 같은 것도, 도시에 살면서 노동이나 주거공간 등 내가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들은 과연 어디서부터 비롯되고 있는가 했을 때, 자전거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이 이런 도시의 구조라든지 규율을 조금은 뒤집어 놓을 수 있는 하나의 저항의 요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저는 있어요. 어쨌든 궤적을 연결시키자면, <술자리다큐>는 소재가 되게 일상적이면서 늘 반복되는 일들이라는 거죠. 반복되는 그런 환경 속에서 이걸 즐겨야 하는데, 즐기지 못하게 하는 건 뭔가, 대화를 통해가지고 너무 의미를 찾으려 하는 거, 이런 자체로부터 탈피하고 싶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있었어요. 일상을 돌아보는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전장에서 나는’도 그렇고 ‘술자리다큐’도 그렇고 ‘자전거, 도시’도 그렇고. 그런 연속적인 선상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어쨌든 서영집 내의 작업의 틀에서 보면 좀 다른, 애매한 지점이 있긴 하죠.
 
김청승: 결국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서 다른 거 같아요. 90년대에는 거의 작품들이 홍형숙 감독님 연출작이었죠. 당시 시대상도 있으니까 초기 세 편은 노동 관련 다큐들이거든요.(주. <삶의 자리 투쟁의 자리>(1990, 홍형숙) <전열>(1991, 다큐멘터리작가회의) <옥포만에 메아리칠 우리들의 노래를 위하여>(1991, 다큐멘터리작가회의) <54일, 그 여름의 기록>(1993, 홍형숙 홍효숙) )
 
공미연: 요 때는 대부분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김청승: 이때만 해도 서영집이 ‘다큐멘터리작가회의’에 들어가서 함께 참여해서 만든 작품이었고, 서영집이 따로 나온 이후에 홍감독이 만든 작품인 ‘두밀리-새로운 학교가 열린다’ ‘변방에서 중심으로’만 봐도 그렇게 투쟁적인, 투쟁을 다룬 작품은 아니고. 그 이후에 2000년대부터 이마리오 감독과 공미연 감독 둘이 있을 때는 이마리오 감독 성향이 서영집을 대표하게 되는 거 같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2001, 이마리오)라든지 ‘미친시간’(2003, 이마리오)이라든지. 이마리오 감독도 없어지고 나니까, 공미연 하고 싶은 대로… (다들 웃음)
 
주현: 지금이 제3의 전성기라고요?
 
공미연: 이제 해보려고요. 멤버들이 모이면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와중이 아닐까…
 
김청승: 푸른영상이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현장들 위주로 작품을 만들고 있는 데 비하면, 서영집 작품들은 예전부터 그렇게 현장 중심의, 투쟁 중심의 영화는 아닌 거 같아요.
 
공미연: 그래서 한때는 서영집 작품은 기획다큐다, 이런 입장들이 있긴 했거든요. 
 
김청승: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만 해도 특정 투쟁사업장, 노동조합이라든지 대추리 같은 그런 것도 아니고.
 
공미연: 나중에 안 되니까 감독이 직접 출연해서 주민등록증을 찢는다든가 그런 상황을 연출하죠.
 
김청승: ‘미친 시간’이나 ‘경계도시’도 보면, 현재의 특정 장소의 투쟁을 알리는 영화는 아니라는 거죠. 결국은 감독이 갖고 있는 관심사에 따라 만들어지는 건데...
 
공미연: 그렇지 만약 ‘마이 스윗 홈’ 같은 것도 서영집에 있을 때 만들었다면 좀 다르게 나오지 않았을까.
 
 
▲서울영상집단 두 감독의 작품들
 
 
김청승: 가끔 그런 게 있어요. ‘술자리다큐’가 너무 운동적인 성격이 없다거나 술자리를 다루는데 진상이 없다거나, 그런 이유로 이 영화를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폄하하는 말도 들었어요. 또 모 지역에 정기상영회를 하는 친구들은, 내가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뭐라고 소개할지 모르겠다 하고 안 틀어주더라구요. 전 개인적으로 독립다큐가 계속 자기 안에서, 이 좁은 판에서 맴도는 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선입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독립다큐는 곧 투쟁, 선전, 재미없고 지루하고, 맨날 똑같은 구호만 외치는, 거의 운동하고 동일시하는 선입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건 그 시기를 같이 지내왔던 선배들이 여전히 이 판에 남아 있고, 그 논리로 계속 이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인 거죠. 서울영상집단은 사실은 투쟁영화를 만드는 곳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아니었던 거 같기도 한데, 제가 봤을 때는. 그런데 여전히 누군가는 그렇게 규정짓고 있는 거고, 그 규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술자리다큐’를 굉장히 의아해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거죠. 푸른영상 작품들도 지금 보면 배경만 투쟁현장일 뿐이지 투쟁 영화나 운동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는 없거든요. 결국은 감독 개인적인 얘기를 다 하고 있는 건데 여전히 이 판 자체가 독립다큐 하면 투쟁, 너무 쉽게 결부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하죠. ‘술자리다큐’는 그런 면에서 제가 굉장히 높이 치고 있죠. 독립다큐는 서영집, 노뉴단(노동자뉴스제작단), 푸른영상, 이렇게 크게 분류를 해왔고, 이 전통적인 집단은 늘 투쟁에 결부된 곳이었는데 거기 속해 있는 감독이 ‘술자리다큐’를 툭 던졌다는 것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거죠.
 
주현: 김청승 감독님이 만든 ‘마이 스윗 홈’은 무료로 온라인으로 뿌리셨어요. 왜 그랬어요?
 
김청승: 왜 그랬냐 하면요, 저는 다큐라고는 학교 다닐 때 우연히 ‘송환’(2003, 김동원) 본 거밖에 없었고 우연히 만들게 됐는데, 문감독님이 인디다큐페스티발이라는 게 있으니 내봐라 해서 내서 상영을 하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뒤풀이 자리에 갔는데, 혹시 시네마달(주. 독립영화 배급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땐 독립영화가 어떻게 배급되는지도 몰랐고 시네마달도 처음 들었고. 문감독님이, 웬만하면 좋은 영화는 대체로 시네마달에서 연락이 오는데 왜 안왔을까 했고, 그때 아 우린 팽 당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영화제에선 한 번 틀긴 했는데 이걸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막막하더라구요. 시네마달이라는 데서는 연락이 없고, 이후 영화제에서 튼다는 보장도 없고. 많은 사람들 보여주려고 만들었는데. 그랬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제일 쉬운 일이었으니까. 근데 사실 많이 보진 않았어요. 
 
현: 다른 영화제에서 틀 수도 있었을 텐데.
 
김청승: 사실 제가 첫 다큐다보니까 굉장히 촬영도 편집도 거친데, 영화제를 한두 번 경험하면서 느꼈던 거는, 독립다큐 판인데 여기도 외형적인 조건을 굉장히 중요시하는구나, 느꼈어요.
 
주현: 외형적 조건이요?
 
김청승: 안정된 촬영, 세련된 편집, 그런 거. 그런 조건에는 내 영화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이 영화는 환경영화제에 한 번 초청을 받았고, 제가 내서 된 영화제는 인디다큐페스티벌하고 서울독립영화제 딱 두 군데밖에 없어요. 1년 동안 열린 영화제에서 딱 세 번 튼 거죠. 그 중 한 번은 초청이었고. 어차피 영화를 만든 목적은 딱 두 가지니까.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거나 수익을 내거나. 독립다큐는 수익이 안 되는 거 알고 있었고. 많이라도 보여주고 싶은데, 이 시스템은 전혀 아는 바가 없고, 할 수 있는 건 그냥 뿌리는 거.
 
주현: 상영회 같은 것도 따로 안 했어요?
 
김청승: 제가 독립다큐를 보고 관심을 가지고 이 일을 하게 된 게 아니다보니까 공동체상영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고,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몰랐고. 이 판에 있으면서 알게 된 거지만, 공동체상영도 사실은 기준이 있단 말이에요. 가장 유리한 거는 개봉을 하는 거예요. 개봉을 하면, 개봉과 동시에 홍보가 공동체상영으로 이어져요. 지방에서 작은 영화제를 할 때 컨택 1순위가 개봉한 다큐예요. 그리고 특정 주제가 있죠. 공동체상영을 그나마 추진하는 단체들이 선호하는 주제가 있어요. 그 주제에 맞는 영화냐 아니냐가 중요하고. 그리고 영화제 상을 많이 받고 소문난 영화들이 아무래도 상영을 많이 하죠. 제 영화는 제가 풀어서, 사람들이 공동체상영에서 얼마나 트는지는 알 수 없는데, 제가 아는 공동체상영 횟수는 10회가 안 돼요. 
 
▲인터뷰를 함께 진행한 편집위원회 현 님
 
주현: 그때도 상영료를 안 받았어요?
 
김청승: 받은 것도 있고 안 받은 것도 있고. 주시면 받고. 
 
주현: 독립영화를 공정하게 상영료를 지급하고 상영하는 게 관례잖아요. 그게 사실 중요한데, 오히려 정당한 상영료를 포기하고 풀어버리시는 선택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저렇게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후에도 작품이 계속 나올 텐데, 배급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거나 계획이 있으신지요?
 
김청승: ‘술자리다큐’가 사실은 독립다큐 중에서는 굉장히 재밌는 다큐에 속하거든요. 독립다큐 하면 떠오르는, 정치적 색깔이 드러나는 다큐도 아니고. 그런데 이 영화가 공동체상영을 대여섯 번 했는데, 그게 다 저희가 만든 거예요. 저희가 사람을 만나서 섭외해서 틀었거든요. 저희가 하지 않은, 외부에서 알아서 틀어준 경우는 얼마 없어요. 두 번인가. 뭐냐면, 서울영상집단이라고 하면 아는 사람만 알긴 하지만 브랜드는 브랜드거든요. 그런데 이런 것도 내가 가만히 있으면 상영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상영이 되고 안 되고가 내 의지가 아닌 거예요. 그런 걸 많이 느끼고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이 끝나면 배급이나 상영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긴 해요. 너무 안 좋은 구조가… 다큐 관객은 대부분 20대 초반 여성들이잖아요. 
 
주현: 아 그래요?
 
김청승: 제가 보기엔 그래요. 영화제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그런 거 같아요. 이 사람들이 교육을 받고 어느 순간 제작자로 변신을 해요. 그럼 이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면 이 사람들보다 조금 더 어린 친구들이 대학교 와서 매니아틱한 문화를 찾으면서 다큐를 보고, 그나마 있는 관객층이 또 제작자가 돼버려요. 뭐냐면, 제작자, 쉽게 말해 연출자, 그리고 매니아 층 관객, 이 두 개만 존재하는 거예요, 이 판에는. 이렇게 돌아가는 구조가,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고 관객을 만나려면 연출자 외에도 PD도 있어야 하고 촬영감독, 녹음감독, 편집감독 등의 스탭도 있어야 되는 거고, 상영 배급 과정에서 다양한 스탭이 있어야 되는 거고, 관객도 훨씬 넓어져야 되는 건데, 이건 사실 너무 안 좋은 거죠. 그냥 우리끼리 아는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보고 모여서 영화제 만들고 모여서 상 주고 모여서 이 영화 안 좋아 욕하고, 이게 좀 안타깝죠. 
난 개인적으로 대학교 때 극영화했었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진 웬만한 극영화들은 이제 재미없어서 못 보거든요. 알고 보니까 다큐가 훨씬 더 재미있는 거야. 그걸 아는 사람들이 적다는 거죠. 그걸 아는 사람들이 친구 손을 끌고 온다거나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상영회를 꾸려 본다거나 그런 적극성이 있으면 좋은데 그렇진 않고. 다큐 보다가 바빠지면 그냥 생활하게 되고 정말 여력이 생기면 바로 연출할 준비를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작품이 괜찮게 나오면 남고 아니면 떠나버리고. 너무 단순한 구조가 돼 있어서… 제가 보기엔 그렇게 보여요.
 
주현: ‘서영집 작품 다시 보기’ 하잖아요. 왜 하셨는지 궁금해요. 저도 마음은 오고 싶었는데 못 왔거든요.
 
김청승: 공 감독님이 혼자 계셨고, 그러나 제가 들어왔고, 다른 두 분이 또 왔는데, 사실 공 감독님 빼고 다른 세 명은 사실 서영집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그래서 우리 자체부터가 서영집 다큐들을 볼 필요가 있었고, 보는 김에 사람들 초대해서 같이 보자, 한 거고. 
 
공미연: 아까 제3의 전성기라고 했듯이, 사람들이 오고 나고 모이고 할 필요도 있었죠. 서영집이라는 데가 다큐 제작 단체인데, 서영집 멤버가 아니더라도 이 공간에서 같이 이야기하고 다큐멘터리에 대해 어려움이 있으면 같이 얘기하고 이런 곳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요. 신다모(주. 신진다큐모임) 같은 새로운 모임도 있고 하니까 여기를 좀 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싶기도 하고. 후원회원들도 좀 와라, 하는 느낌도 있었고.
 
김청승: 독립다큐 하면 곧 푸른영상이니까, 그런 너무 단순한 공식이 싫기도 했고. 어떤 식이든 독점은 안 좋은 거니까.^^ 건전한 라이벌?
 
공미연: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푸른영상을?
 
김청승: 그렇죠.
 
공미연: 왜, 뭣 때문에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데? 어이가 없다.^^
 
김청승: 서영집 작품이 더 좋은 거 같긴 해요. 
 
주현: 다음 인터뷰는 꼭 푸른영상 해야겠어요(웃음).
 
김청승: 저희 내부에서는 멤버를 충원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서울영상집단이라는 것을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었고.
 
주현: 사람들은 좀 왔어요?
 
공미연: 시기적으로 편차가 있는 거 같아요. 많이 올 땐 열 명 정도? 그럼 사무실이 가득 찼죠. 제가 워낙에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사무실에서 술방 열고 이런 걸 하고 싶기도 하고…
 
김청승: 감독님 병나고 부터는 (서영집 작품 다시 보기를) 안 하고 있어요.^^ (주. 공미연 감독은 최근에 알레르기로 고생한다고…)
 
주현: 그니까, 하시는 이유가 그거? 영화가 아니라 술이 주가 돼서?^^
 
김청승: 저흰 상영회하면 여기다 술상 차려놓고 술 마시면서 같이 봤거든요.
 
주현: 지금까지 뭐뭐 보셨어요?
 
김청승: (서영집 작품을) <삶의 자리, 투쟁의 자리>(1990, 홍형숙)부터 순서대로 쭉 보다가 <미친 시간>에서 막혔어요, 지금. 관객이 너무 안 와가지고 빵꾸나서. 그 다음에 다른 상영 영화랑 겹치고 해서 쉬었더니, 지금 석 달째 못 하고 있는 건가?
 
주현: 다시 보니까 특히 좋았던 작품은?
 
김청승: 저는 사실 거의 처음 본 것들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두밀리 -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가 좋았어요. 
 
공미연: 저는 <삶의 자리, 투쟁의 자리>요. 철거에 관한 건데, 일반적인 철거가 아니라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주거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35분짜리인데, 이 짧은 시간에 엄청난 정보들이 있는데 노태우 당시 주택정책, 노조 탄압, 이게 다 연결돼 있는 거야. 엄청난 정보가 들어 있는 거예요.
 
김청승: 이거 볼 때 김동원 감독님의 <상계동 올림픽>(1988)을 같이 보고 비교했어요. 같은 주제를 놓고 푸는 방식만 봐도 푸른영상과 서영집은 다른 거 같아요. 이런 차이도 있어요. 푸른영상은 1인 제작 시스템이잖아요. 한 사람이 한 작품을 알아서 다 끝내야 돼요. 구성원이 다섯 명이면 1년에 다섯 작품이 나오는 거야. 그런 시스템이라면 서울영상집단은 작품 하나를 딱 정해서 구성원이 연출, 촬영, 제작, 역할을 나눠요. 극영화처럼. 그래서 이 작품을 끝낼 때까지 다른 작품은 안 해요. 
 
공미연: 그래서 작품이 일 년에 한 편, 이 년에 한 편 나오죠.
 
김청승: 그래서 작품수가 적죠.
 
주현: 그래도 지금은 서영집도 1인 제작 시스템 아닌가요?
 
김청승: 그렇진 않아요. 지금은 사실 <노동감상>이 길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두 작품을 동시에 하고 있는 거구요, 지금도 웬만하면 혼자 촬영 가진 않아요.
 
현: 작품 선택할 때 회의에서 합의를 해서 결정하나요?
 
공미연: 각자 아이템을 낸다면 좀 더 구체적인 게 더 될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현: 실현가능성 말고, 작품을 쳐내는 다른 기준이 있을까요?
 
공미연: 쳐내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올해 우리가 <명배우>라고 단편으로 만들어진 게 있는데, 지금 비상근으로 있는 멤버가 작년부터 촬영해서 올해 완성했는데, 일단은 구체적으로 안을 내도록 계속 회의를 했죠. 본인이 작업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건 절대 안 돼, 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해야 한다고 강제를 하고, 촬영을 같이 가거나 혹은 촬영자를 붙여주거나 했죠. 오히려 완성하도록 좀 강제하는 측면이 있죠. 
 
김청승: 홍 감독님 나가면서 그 시스템이 약간 흔들린 거 아닌가요?
 
공미연: 아뇨. 계속 그런 식으로 작업해왔어요. 이건 좀 논외의 이야기인데, 저는 제가 계속 촬영을 해왔기 때문에, 제 작품할 때는 다른 사람이 촬영을 해줘야 하는데 저는 촬영을 할 줄 아니까…
 
김청승: 남이 하는 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지^^
 
공미연: 사실 그게 잘못된 건데, 맡겨야 하는데, 맡기지 못하는 게 있는 거지. 그래서 그냥 제가 연출과 촬영을 다 같이 하기 때문에 스탭이 한 명 줄어드는 거지만, 원칙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해주고 같이 맞춰가는 게 더 맞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김청승: 제가 작품 혼자 만들 때랑 이번 작품에서 누가 촬영해줄 때를 비교해보면, 제가 카메라 들고 있을 때보다 그냥 볼 때 훨씬 더 많은 게 보이더라구요. 카메라 보는 사람은 뷰파인더 안에 있지 않은 거는 못 보니까, 그걸 제가 디렉팅하게 되는 거죠. 지금 저희 사무실이 예전처럼 구성원이 많지 않아서 원래 서영집 스타일대로 하지 못하는 건 있죠.
 
공미연: <술자리다큐> 할 때는 서영집 멤버는 아니지만 스탭이 세 명 있었어요. 조연출 둘에 붐맨, 오디오 녹음까지, 그렇게 다녔어요. 멤버가 아닐 뿐이지. 돈도 벌어야 되니까 한정된 기간에만 참여를 했죠.
 
▲왼쪽부터 김주현(미디액트), 공미연, 김청승(서울영상집단)
 
 
주현: 요즘 화두랄까 고민이 있다면? 서영집 활동하는 거에 대해서요. 활동비가 없는 게 고민이라든가…
 
김청승: 활동비를 줄 수 있으려면 수익사업을 해야 하고, 수익사업을 하려면 또 구성원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구성원을 모집하려면 또 돈이 있어야 하고… 이걸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공미연: 예전엔 수습제도도 있긴 했는데, 기본적으로 서영집이 뭘 강요하거나 시간표를 짜서 기한 내에 뭘 해야 한다 그런 곳이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를 강제해야 되는 곳이거든요. 출근 시간도 따로 없고. 그런 것 자체에 부담이 있으면 와서 할 일 없는 것 같아서 당황하게 되죠. 
 
김청승: 어차피 서로 다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경제적 문제는 좀 부차적인 거고.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큐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거의 대부분 연출만 하려는 거 같아요. 푸른영상은 유명하기도 하지만 거긴 1인 제작 시스템이니까 들어가면 자기 작업을 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여긴 들어와서 자기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한동안 자기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죠. 사실 저만 해도 여기 들어올 때 내 작업 하려 들어온 건 아니었거든요. 다큐 배우려고 들어왔죠. 시스템 겪고 배우려고 들어왔다가, 지금 희망버스 작업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주현: 많이 배우셨나요?
 
김청승: 예.
 
주현: 어떤 부분을요?
 
김청승: 저도 독립다큐 하면 푸른영상을 생각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다큐를 극영화처럼 스탭들과 찍는다는 게 놀라웠고, 내가 혼자 모든 걸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어요. 물론 현장에 붙어 있는 다큐들이 힘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기획다큐를 잘 만들어도 따라가지 못하는 힘을 현장 다큐는 가지고 있는데, 현장에 있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현장에 붙어 있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다큐를 만들 수 있는 곳이 여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극영화나 사진 촬영과는 다른 다큐만의 촬영법이 있는데, 그걸 공 감독님한테 많이 배웠고. 많이 배웠죠.
 
주현: 서울영상집단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셨나요? 계획이나 그림 같은 거.
 
김청승: (공미연을 보며) 있어요?
 
공미연: 없는데… (다들 웃음)
 
주현: 지금 이 상태가 좋으신 거예요?
 
김청승: 그런 게 있으면, 그런 목표가 있으면 굉장히 고민이 시작되는 거잖아요. 그게 없으니까 지금 각자가 꽂힌 작품을 할 수 있는 거고, 굳이 땡기는 게 없으면 연출 안 해도 되는 거고요. 연출이란 게 사실 굉장히 피곤한 거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그 짐을 지려고 하는 것도 사실 이해가 안 돼요. 
 
주현: 최근에 흥미롭게 봤던 한국 독립다큐가 있나요?
 
김청승: <조울>(우현하, 2012)이나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임덕윤, 2009,), <술자리다큐>. (공미연 웃음) 농담 아녜요. 그런 걸 좋아해요. 나 이외의 원인 때문에 만든 영화가 아니라 자기 이유 때문에 만든 영화.
 
현: 공 감독님한테 궁금한 거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혼자 서영집의 깃발을 들고 계셨던 다른 이유가 있나요? 사실 서영집이 아니어도 영화를 만들 수는 있잖아요? 힘들게,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많은 자료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해 가면서 지금까지 혼자서 깃발을 내리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공미연: 글쎄요, 그게 참…
 
김청승: 사람이 순해서…
 
공미연: 뭔가 하나에 들어가면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욕심은 없는데, 그냥 하면 진득하니 하는 건 있는 거 같거든요. 제가 아무것도 없을 때 서영집이라는 공간에서 다큐를 배웠고 어쨌든 누군가한테는 이 공간이 다큐를 시작하거나 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여전히 있어요. 제가 이 공간을 접더라도, 다큐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 뭔가 배우려는 사람들, 다큐 작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영상집단이라는 공간은 여전히 필요할 거 같아요. 
 
현: 그럼 앞으로도 계속 서울영상집단에 남아 계실 거죠?
 
공미연: 아니 저는 좀 정리하겠다고 늘… (다들 웃음) 빠질 궁리를 하는 거죠 이제.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주현: 마지막으로 더 하실 말씀 있나요?
 
현: 사실 처음에 기획이 ‘밥은 먹고 다니니?’여서 가볍고 재밌는 얘기를 할 줄 알았는데 엄청 진지해진 감이…
 
공미연: 그러게 너무 진지했어. 제가 <전장에서 나는> 이후로 <술자리다큐> 할 때까지 공백이 길다고 아까 그러셨는데, 그때 이유 중에 하나가 더 있어요. 풍물패 터울림이라고 있는데, 거기 5년 동안 올인한 거예요. 그땐 정말 영화인으로 말고 풍물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김청승: 근데 풍물 정말 못 해요.
 
공미연: ^^놀기 위해서 간 건데, 아무튼 모임이 일주일에 두세 번쯤 있고 주말마다 다 가고 그랬어요. 작업을 거의 하지 않고 엄청나게 논 거죠. 놀면서 찍은 게 <술자리다큐>이긴 하죠. 그런데 청승 들어오면서 풍물을 금지를 시키더라고요.^^ 작업을 하셔야 된다, 하면서. 
 
김청승: 뭐든지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미연: 그런 거에 비하면 청승은 취미생활도 하나 없고요,
 
김청승: 취미생활 많이 해요. 자전거도 타고 사진도 찍고. 기타도 띵까띵까 하고 있고. 
 
공미연: 다 혼자 하는 거. 사회성이 없어요, 사회성이.
 
현: 두 분은 어떤 면에서 서로 맞아요?
 
공미연: 안 맞아요, 전혀 맞지 않아요.
 
김청승: 달라서 부딪힐 일이 없는 거예요.
 
현: 서영집 멤버가 될 자격이나 조건이 있다면?
 
공미연: 자격이나 조건은 따로 없어요. 와서 얼마나 버티냐, 이건데 사실은. 버티는 게 많이 어렵기 때문에 선뜻 강요하지 못하겠더라고요.
 
현: 경제적인 거 말고 다른 버텨야 할 게 있다면 뭘까요?
 
공미연: 자기 계획을 갖고 스스로 하는 거?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게 힘들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천년만년 서영집에 있지 않아도 돼요. 오래 내다보고 서영집에서 같이 오래 활동하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는 지금 현재 활동하고 싶은 게 더 중요하지 않나 해요. 왜냐면 미래를 내다보고 나는 모든 짐을 다 지고 평생을 여기 있을 거야, 그렇게 들어오면 그거부터가 너무 힘들거든요. 그래서 좀 느슨한 구조도 만들어보자, 비상근 체제도 하고. 하지만 여기가 어떤 구조이든, 다 개인의 선택이더라고요. □
 

인터뷰를 마치며…

 서울영상집단 인터뷰를 하기 전에 저녁을 함께 먹었다. 서영집의 두 감독들은 건축영화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낮에 보고 온 오가와 신스케의 영화 <산리츠카 - 이와야마에 철탑이 세워지다>에 대해서 한참을 얘기했다. 일본 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 운동을 다룬 70년대의 일본 다큐멘터리가 지금의 밀양 송전탑 건설 상황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거듭거듭 나중에라도 영화를 꼭 보라고 우리에게 추천해주었다. 이상하게 외국 작가의 작품에 대해 열성적으로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서울영상집단의 두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들이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의 힘이 무엇인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 손에는 서울영상집단의 DVD를 다른 한손에는 <술자리다큐>포스터를 들고 나오는 밤. 왕년(?)의 영상 집단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궁금해서 시작한 이번 첫 번째 릴레이 인터뷰에서 우리는 애초 시작했던 물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은 것 같았다. 서울영상집단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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