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연구
정책연구안내
동향
포럼
연구저널ACT!
미디어교육웹진
관련웹사이트

> 미디어정책연구 >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영상미디어센터
진보적 미디어 운동 저널 제 2 호

활동가 인터뷰
"우리가 미디어다" - 미디어운동의 일보 전진, [미디어연대]의 송덕호 사무처장

[미디어 활동가 인터뷰]

 

"우리가 미디어다" - 미디어운동의 일보 전진

<미디어연대>의 송덕호 사무처장


박진수 & 조동원 (미디액트 <ACT!> 편집위원회)
2003. 8. 11. 2pm / 미디액트 대강의실
 

『이제 시민들이 직접 미디어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가 미디어다라는 걸 실현시킬 수 있는 제도라든지 환경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지원하고, 행동하는 것을 미디어연대에서 해나가려는 것이다... 』
 

"삼가 모십니다"  


 

ACT : 결혼식 같은데?(웃음)

송덕호 : 그런가?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더라. 다들 청첩장으로...(웃음) 원래 할 땐 `삼가모십니다' 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초청합니다' 였던 것 같은데...(일동 웃음) 

송덕호 사무처장이 건넨 <미디어연대> 창립식의 초청장을 열어보며 이야기가 시작됐다. 삼단으로 곱게 접힌, 금색 글씨로 "삼가 모십니다"라고 다소곳하게 적힌 초청장을 펼치자 그 안의 "우리가 미디어다!"라는 굵은 글씨체가 한층 도전적인 외침으로 들린다.

ACT : <ACT!>가 이번 15일날 2호가 나오는데, 여기의 미디어 활동가 인터뷰 꼭지이고, 특히 이번에 미디어연대가... 음, 어떻게 불러야 하나? 시민언론운동단체?

송덕호 : 시민 언론운동 보다는 시민 '미디어' 운동 단체라고 하는 게 낫겠다. 언론 운동이라고 하면 폭이 좁지 않나. 그리고 언론 하면 신문, 방송, 인터넷 이 정도만 언론으로 보지, 그 외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뉴미디어 같은 것은 포함이 안되니까...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핸드폰도 미디어다라고 할 정도니까. 언론운동이라고 하면 폭이 좁다.

ACT : 그 이야기가 오늘 주된 인터뷰 내용이 될 텐데, 활동가 인터뷰이다 보니 우선 간략하게 개인적인 활동 역사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그리고 나서, 이번 미디어연대 창립과 관련해서 방금 말한 것과 같이 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언론(개혁)운동이 개념적으로, 내용적으로, 형식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한 맥락이 있을 것 같은데, 그간 관계한 언론운동에 대한 평가 속에서 미디어연대의 출범이 갖는 의미, 앞으로의 활동 전망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
 

태백산맥 - 부산 복집 사건 - 미디어 연대
 

ACT : 개인 소개부터 먼저 부탁한다.

송덕호 : 어디서부터 개인적인 소개를? 고향부터 해야되나? (웃음)

전라도 고흥 출생이고, 벌교라고 혹시 아는가? 태백산맥의 무대였던... 벌교에서 5분 정도 들어가면 벌교하고 고흥 하고 인접지역에서 태어났다. 7살 때 부모님 따라서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남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유복하진 않았지만... 약간 못사는 축에 속했다.

서울공고 기계과를 다니다가, 학교를 다니나 공장을 다니나 똑같을 것 같더라. 집안사정이랑 맞물려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가서 선반을 만졌다. 기계과에서 선반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렇게 살면 안될 것 같더라. 그때는 운동이라는 것도 전혀 몰랐고, 평생 기계만 만질 것 같고.  

그래서 검정고시를 치르고 명지대 정외과에 갔다. 학교 다닐 때는 학생운동을 본격적으로 한 건 아니고, 학생운동 언저리에 있었다. 해야되긴 해야될 것 같은데, 뭔가 나와 탁 맞는 것 같진 않고... 그렇게 있다가 4학년 때부터 진로 고민을 했다.

내가 85학번이니까 92년에 졸업하고 일년 정도 일반회사에 다니다가, 이것도 전혀 비전이 없더라. 그때 졸업하고 민언련에 처음 회원 가입했는데, 그 계기가 뭐였냐 하면, 내가 4학년 때 강경대가 죽었다. 그리고 그 4월부터 계속 시위 현장에 있었다. 그러면서 당시 국무총리였던 정원식이 밀가루를 뒤짚어 쓰는 사건이 있지 않았나. 그때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대학생들 패륜아라고 몰면서 사회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강경대 죽었을 때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계속 분신하고 그러지 않았나. 그러던 게 일순간에 그렇게 바뀌는걸 보면서, 사회운동에 언론운동이 전제되지 않으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졸업하기 바로 전에 가입해서 민언련 언론학교를 다니고, 활동하게 됐다. 대선이 92년이었나? 그때 사회주의 체제가 일제히 붕괴됐고... 대선에서도 부산 복집 사건이 있었지 않나. 김영삼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기관장들이 모여서 회의 한 걸 정주영이 있었던 국민당에서 발표를 했는데, 그것을 녹취한 쪽이 불법이다 쪽으로 언론이 다 몰고 가지 않았나. 그 사건을 계기로 김대중이 완전히 이겼다고 생각했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까 경상도 지역에서 몰표가 쏟아졌다. 복집 사건으로 김영삼이가 불리하다라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니까 지역 감정이 폭발하면서 쏟아져 버린 거다. 그러면서 갑자기 사회 운동 쪽에 찬바람이 확 불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운동이란 어렵지 않은가란 회의가 굉장히 많았었고, 다들 뭘 해야 할지... 그 때 민언련에서 선거관리감시활동을 같이 했었는데, 선거 끝나고 다 패배주의에 휩싸였다.

그러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했던 게 영화 쪽이었다. 영화는 내가 만들면 직접 내 얘기를 할 수 있지 않나. 또 잘만 만들면 많은 사람들한테 동시에 보여 줄 수 있고. 사회운동이 불가능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찾다보니까 영화 쪽으로 관심이 쏠린 거다.

그때부터 사설 학원에 있는 피디 교육과정을 들으면서 영화공부를 했다. 비디오 하루에 서 너편 씩 보고. 대학 때만 해도 영화하면 부르주아지고 사치다, 했었다. 미래는 전혀 생각 못하고... (웃음)

충무로에 들어가 <두 여자 이야기>만들었던 이정국 감독 밑에서 조연출부터 연출 수업을 4, 5년 하다가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만뒀다. 그때도 계속 민언련 회원이었으니까 작업 없을 때는 민언련에 나가서 도와주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그게 97, 8년이었을 거다. 그 때 민언련의 임상택 사무총장이, 지금은 EBS이사로 갔는데,  그 때 그 분이 VJ강좌를 만들겠다고 설치더라.(웃음) VJ강좌 꼭 해야된다면서 갈 때마다 꼭 나를 붙잡고 그러는 거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언련에서 영상매체 쪽으로는 나 밖에 없었다. 회의 때마다 그 얘길 하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는 거다. 그래서 내가 하도 안타까워서 그 프로그램을 내가 준비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VJ가 뭔가, 공부를 시작했다.

 아는 VJ들 만나서 인터뷰도 해보고, 책도 뒤적여보고 하다보니 퍼블릭 액세스, 비디오 저널리즘 이런 것들이 나오더라. 비디오 운동 쪽으로 눈을 뜬 거다. 강좌 커리큘럼 짜주고, 강사 섭외 해주고, 설비 세팅까지 다 해줬다. 다 하고서 손을 떼려고 하니까 손을 뗄 수가 없는 입장이 돼버렸다. 그래서 1, 2회 정도만 해주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자고 시작했는데, 1-2회가 지나도 마땅한 사람이 안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활동이, 내가 애초에 영화를 하려던 '나의 얘기를 내가 만들어서 보여준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심각하게 고민을 했고, 결국은 영화를 그만두고 비디오, 퍼블릭 액세스 운동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거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강의도 하고, 민언련에 대안TV도 만들고 그렇게 쭉 활동을 해오게 됐다.

그러다가 2, 3년 전에 민언련 내부에서 대안TV와 관련해서 조직적으로 문제가 생겼다. 대안TV가 2-3년 독립적으로 활동을 해왔는데, 그걸 민언련 사무국으로 흡수를 하겠다는 얘기가 나와서 내가 반대했다. 계속 일정한 독립적인 기구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조정이 안됐다. 그래서 대안TV를 나오고, 그 때 RTV가 출범하면서 소개를 받아 초창기에 방송준비에 참여했는데, 내부의 어지러운 일에 휘말려서 역시 거기도 그만뒀다. 그리고 나서, 시민방송과 관련 있었던 인터넷 방송인 CTV에서 3-4개월 더 있다가 작년 9월에 그만뒀다.

옛날 대안TV 식구들과 한 달에 한번씩 모이는 자리가 있다. RTV를 같이 그만뒀던 사람들과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있었고... 뭔가 이렇게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있더라. 그 친구들이랑 같이 고민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처음에는 조그맣게 퍼블릭 액세스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시민단체를 만들어보자, 하고 6명 정도 모여 준비모임을 꾸렸다. 그리고 준비모임을 꾸리고 하다 보니, 폭이 넓어지더라. 미디어 운동으로...

올 3월부터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게 됐고, 준비위원들 모셔서 3월부터 했으니까 한 5개월 됐나? 그리고 이제 8월 20일면 창립을 하게 된거다. 꽤 길었다. (웃음)

ACT : 언론이 전제되지 않는 사회 운동은 힘들겠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던 것 같은데, 영화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좀 더 구체적인 계기가 있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송덕호 : 그때 아마 92년 전후였을 거다. 뭘 해야 할까 모르고, 정신적인 공황상태였던 것 같다. 민언련에서도 당시 산악회가 잘됐는데, 그 작은 민언련에서 사람들이 30명이 넘게 산행을 할 정도로, 뭘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 때 그리고 케이블 방송이 개국 준비중이었다. 하나의 목표는 케이블 TV에 입사하는 거였는데, 영상언어로서 영화를 보다보니까 굉장히 공부할 것도 많고 매력적이고 하더라.

ACT : 그때 영화 쪽이라고 함은 대안언론 차원에서의...

송덕호 : 그런 건 아니었다. 그때는 대중운동에 대해 심각한 회의에 빠졌었다. 어떻게 복집 사건 같은 게 터졌는데 그 사람들에게 표를 던질 수 있느냐. 너무나 실망을 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영상운동, 영화 쪽을 생각한 거다. 영화도 독립영화보다는 충무로 쪽이었다. 또 그 당시 영화 쪽 흐름에도 386세대들이 영화판에 투입되면서 새로운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었다.

ACT : 대안TV를 민언련 사무국 안으로 들어오게 했던 사건으로 그만두었는데, 민언련이 독립적이던 대안TV를 사무국으로 끌어들이려 했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나?

송덕호 : 어떻게 보면 순수한 의도였다. 그 때 대안TV 활동가가 나 포함해서 네 명이었다. 인건비, 활동비, 테잎 구입비는 우리가 만들어서 작업했다. 기껏해야 활동비 만들 수 있는 게 30만원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무국에서 민언련 사무국 간사들 수준으로 활동비를 지원하겠다 하더라. 그런데 그 지원비를 계기로 민언련에서 활동에 간섭하려는 게 있었다. 민언련 사무국 회의에 들어와라 등의...

ACT : 활동 내용에 대한 제약도 있었나?

송덕호 : 그런 건 없었지만, 민언련 사무국에서 하는 조직적 활동에 기여해야된다면서 어떤 활동의 촬영을 부탁한다거나 하는 일은 있었다. 그 전에는 민언련 활동이라도 자체판단으로 나가고 안나가고 했었다. 그런 마찰들에서 시작해서 점점 커지다가, 대안TV에서 인원 한 명을 충원할 일이 있었는데 그 선발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결국 그만두게 됐다.

ACT : 대안TV 있으면서 제작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했나?

송덕호 : 주류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주로 다루는 뉴스전문 채널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상근 기자가 세 명이었고 객원기자가 열 명 정도였고. 취재 내용은 주로 집회 등으로 3분 정도씩 매주 서너 꼭지씩은 올렸다. VJ강좌 준비하고, 운영하고, 강의 나가고, 퍼블릭 액세스 관련한 일에 참여하고. 퍼블릭 액세스와 관련한 일에서도 일정 부분은 사무국에서 맡고, 제작과 관련해서는 대안TV에서 맡으면서 그 사이에도 불협화음이 좀 있었다.

ACT : 인터넷 방송을 한 건가?

송덕호 : 그렇다.

ACT : 그때가 몇 년도 인가?

송덕호 : 대안TV 만든 게 97, 98년도였다.

ACT : 인터넷 방송으로는 초창기였는데...  

송덕호 : 당시에 참세상 방송국이랑 민중의 소리, 노동의 소리 정도 있었다. 오마이뉴스 있었고.

우리는 다른데 보다 굉장히 활발했다. 다른 데는 동영상을 올려도 간단하게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정도였는데 우리는 기사까지 썼다. 기존 방송국 뉴스포맷이었다. 기사 직접 작성해서 멘트까지 입히고, 3분에서 5분정도로 내보냈으니까. 그것 때문에 안 좋은 얘기도 있었다. 주류 방송이랑 똑같은 포맷 아니냐고.

내용은 방송이나 언론에서 볼 수 없는 진보적인 것이었지만 형식은 그렇지 못한 셈이다. 어떻게 그걸 깰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그랬다. 그렇게 2-3년 하니까 기사 쓰는 투도 달라지고, 기사에서도 새로운 포맷이 나오고 하더라. 그때 해산하게 돼서 아쉬움이 좀 있다.

 ACT : 그리고 RTV, CTV를 거쳐 미디어연대로 오는데 있어 다양한 모색이 있었을 것 같은데?

 송덕호 : RTV, CTV 다 그만두고 뭘 할까 고민했다. 내가 그 해에 결혼했으니까.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웃음) 하여간, 뭘 할까 집사람이랑 얘기 많이 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뭔가 생각해보니, 미디어 운동이나 이런 쪽이었다. 집사람이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바람에. 당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건 이건 거 같다고.(웃음)

 ACT : 경제적인 문제는?

 송덕호 : 경제적인 문제는 괜찮았다. 집사람도 나랑 같은 비디오 쪽 일을 했던 사람이라서. 일반회사에서 홍보물 같은 것도 만들고 하면서...

나도 가끔은 잘한 건가 생각도 한다. 불안정하니까... 집사람이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민 운동이 돈 버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서로 감수하기로 했으니까...

 
언론 운동에서 미디어 운동으로
 

ACT : 본격적으로 민언련 언론단체에서 활동한 건 90년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80년대에서부터 이어지는 언론운동과 90년대에 변화되는 모습을 현장에서 봤을 텐데. 특히 인쇄물이 아닌 영상을 통한 영상 운동이라는 것이 주류채널에의 액세스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대안적인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데까지의 흐름이 있었을 텐데 그 흐름을 구별해본다면?

송덕호 : 민언련이 그때까지는 조선, 동아의 80년대 해직 기자들의 모임이지 않았나.

87년에  한겨레 신문 만들면서 민언련의 대부분의 사람이 한겨레로 들어가면서 해산해야되느냐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새롭게 시민운동을 표방하면서 언론학교를 처음으로 열면서 시민들이 그 언론학교를 통해서 참여하게 된 거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신문이나 방송 주로 모니터운동하고, 거기서 넘어서 선감연(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도 생기고 했는데, 이렇게 그 때부터 2000년에 법으로 퍼블릭 액세스운동이 도입되기 전까지 언론 운동은 대부분 모니터 중심 운동이었다. 언론에 대한 감시, 비판, 견제였다. 나는 VJ나 퍼블릭 액세스를 접하면서 이런 언론운동이 전부가 아니구나를 느낀 거다. 기존언론구조에서 새로 공공적인 영역을 확보해 가는 것도 필요하고, 대안적인 모습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구나라는 생각들도 하게 됐고.

그러면서 8,90년대 넘어서 2000년대에 시민 운동 안에 대안 언론 운동이란 게 접목된 게, 시민운동 쪽에서는 민언련에서 VJ강좌 만들면서 시작된 것 같다. 퍼블릭 액세스운동이 2-3년 전개되어왔지만 굉장히 미비하다. 어떻게 보면 영상이란 것을 시민언론운동 쪽에서 잘 모른다. 영상뿐만 아니라 미디어에 대해서 이해가 좀 부족한 것 같다. 견제와 감시를 뛰어넘어 대안언론을 만드는 운동으로 나가야되지 않느냐. 감시, 견제한다고 해서 언론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 없다는 건 아니지만, 대안언론이 많이 만들어짐으로 해서 주류언론들까지 변화 시켜 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인터넷 미디어들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주류미디어에 영향을 주고있고... 그런 상태인데 퍼블릭 액세스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단체가 없다. KBS 열린채널 시청자참여프로그램협의회 같은 경우에도 회의를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는 정보이외에는 별다른 활동을 못하고 있고. 3년 정도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 거의 정체되는 거 아니냐. 그런걸 느끼면서 이런 정체된 현상을 깰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미디어센터 운동도 벌어지고 실제로 만들어지고 있고. 미디어를 언론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나 인권의 한 연장선이라든지. 권리로서 미디어를 바라보고 미디어를 확장해나갈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우리가 미디어다라는 슬로건도 기존의 언론이란 것이 시민들이 갖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양도를 해서 언론이 그 권력을 행사 한 것이지 않나. 언론이 그 시민들이 부여한 권리를 오용하는 경우가 많은 거니까. 지금은 중간에 언론이라는 제3의 매개체가 꼭 필요한 시대가 아닌 것 같다. 이제 시민들이 직접 미디어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시민 스스로가 자신이 미디어다라는 인식의 전환 속에서 직접 뉴스를 만들고, 사회 의제를 만들어 내고, 서로 논의하고 토론하고를 직접 나서서 해야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가 미디어다라는 걸 실현시킬 수 있는 제도라든지 환경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지원하고, 행동하는 것을 미디어연대에서 해나가려는 것이다.


미디어 운동의 특수성


ACT : 크게 보면 80년대 언론 운동에서 90년대 미디어 운동으로 넘어오면서 기술적 환경의 변화가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특히 우리에게 대안 미디어라는 게 실물적으로 조직이라든지 활동들이 가시화된 것은 90년대 후반일텐데 그런 인식의 변화 주체의 형성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송덕호 : 우리나라도 독립영화나 이런 진영에서 그런 활동들을 해오지 않았나. 영화라는 쪽에서 접근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새로운 미디어 운동 쪽으로 발전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글쎄, 그 배경이 뭔지는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왜 그랬을까?

ACT : 이론적인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실은 아직은 발단기, 단계 같은 게 있다면 첫 번째와 두 번째 단계 사이에 있는 게 아닌가싶다. 또한, 기형적이게도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공동체 라디오 운동은 우리에겐 없는데, 인터넷이나 노동 영상 쪽은 앞서있는 사례들도 있고. 미디어운동의 경우에도 우리나라가 참 흥미롭다.

송덕호 : 그런 것 같다. 라디오랑 관련해서 예전에 홍대 방송국 친구들하고 만나서 얘기했었는데, 대학 내 라디오가 지금은 다 유선으로 되어있지 않나. 박정희 초기만 해도 무선이었다고 한다. 소출력 단파 라디오. 그런걸 박정희가 들어오면서 전파관리를 하면서 다 바뀐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라디오 운동이 발전하지 않은 측면에 궁금한 게 많다. 주로 인쇄매체중심으로 대안 언론이 있었고. 그 이외에 미디어를 활용한 대안언론은 거의 없지 않은가.

ACT : 인쇄매체의 대안언론도 늦기는 많이 늦은 건데, 그건 군사독재 등의 억압 때문이었다고 보고... 주로 인쇄 매체를 중심으로 대안언론운동이 이루어진 것은 조중동의 권력도 결정적이지만, 우리나라가 문맹률이 낮아서가 아닐까. 다 읽고 쓸 줄 아니까 라디오와 같은 미디어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송덕호 : 해방이후 6.25나고, 바로 군사독재 시절이었고, 그러다 보니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 해야하는지 그런 경험들도 없고 그래서였을 수도 있겠다.


미디어연대의 미디어교육, 그리고  미디어센터와의 연계 필요성
 

ACT : 그런 차원에서 보니까 앞서 언론운동에서도 모니터요원을 양성하는 차원에서 80년대부터 미디어교육이 시작되고, 물론 그 전부터 종교단체나 다른 시민단체에서 자기 목적에 따라 미디어교육 활동을 해왔지만... 그런데 현재까지도 미디어교육은 여전히 미디어, 그리고 그 메시지를 단지 수용하고 정보를 전달받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은데, 사실 미디어 자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미디어교육의 출발이어야 하지 아닐까도 싶다. 모니터요원의 양성은 그 자체로서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미디어교육의 전부는 아니어야 한다고 본다. '현명한 소비자가 되자, 비판적 소비자가 되자'고 할 때 현명하고 비판적인 것은 좋은데, 소비자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외국에서도, 그 개념이 워낙에 텔레비전에 대한 수용자교육으로 등장하기는 했더라도 그게 대안 미디어 운동, 독립 미디어 운동과 연계되는 사례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럴 때 미디어연대의 활동에서 이러한 미디어교육에 대한 접근은 어떻게 진행해 나갈 것인지?

송덕호 : 사실 대안 미디어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 기본적인 활동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미디어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민언련도 보면 열성적인 회원들은 대부분 민언련의 언론학교 통해서 배출된 사람들이고, 대안TV의 경우도 VJ강좌를 통해 배출된 사람들이 활동했고, 미디어연대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회원들은 자체 교육을 통해서 양성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디어 강좌를 많이 열 생각이고, 초창기에는 내가 잘할 수 있는 퍼블릭 액세스 운동, 영상 제작 이런 쪽으로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후에는 시설이 뒷받침되어야겠지만 인터넷을 활용한 미디어, 소출력 라디오 등 시민들이 다양한 미디어를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계속 교육강좌로 만들 생각이다. 그게 미디어 센터와 같은 시설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그 부분이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하고...

일정정도 미디액트와 미디어운동 단체 간에 활발한 교류가 있어야할 것 같다. 미디액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배출되고 있지 않은가. 미디운동이나 다큐멘터리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 지금 미디액트가 그 구조까지는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강의계획을 만들 때 미디액트의 그것을 많이 참고하는데, 강의비용에서 보면 미디액트와 비교가 안 되는 거다. 그런 부분을 미디액트와 미디어운동단체가 같이 강의를 준비하는 형태가 되면 서로 보완할 수 있을 거다. 미디액트는 지금 회원의 자생적인 조직과 활동이 크게 없는 것 같다. 강의 듣고 난 다음 활동 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교육과 사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서 미디어운동 단체와 미디액트가 함께 고민해보는 게 필요하다.


`시민 있는' 시민 운동 속에서 지역미디어센터를...
 

송덕호 : 서울에 하나 있는 미디어센터에 의존할 수만은 없으니까, 지금 강서구에도 준비중이지만, 우리도 직접 미디어센터 설립운동을 벌여나가려고 한다. 1차적으로는 마포 지역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성미산 활동하는데 취재를 많이 나가면서 마포 지역의 성미산 지키는 시민연대 분들과 많이 친해졌다. 그래서 마포지역에 미디어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미디액트는 이름마저 '영상'미디어센터인데, 사실 굉장히 다양한 미디어들이 있지 않나. 그런 미디어들이 같이 이뤄질 수 있는 미디어센터가 필요하다. 지금 미디어센터 운동은 주로 독립영화운동을 했던 분들이 주도해서 전국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도하는 세력이 영상활동가들이어서 그런지 미디어센터를 준비하는 모든 곳이 영상과 관련한 미디어들만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 외의 다양한 미디어들을 같이 결합해서 처음부터 그런 미디어센터로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든다.

ACT : 꼭 그렇지 않다. 미디어별로 센터가 규정된다기보다는, 특정한 주체라든가 지역에서의 특정한 활동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다양한 미디어들이 존재할 수 있는 미디어센터가 된다고 본다. 미디어센터의 개념과 활동이 계속 변모해 나갈 것이다.

송덕호 : 마포는 인적자원이 좋은 것 같다. 마포에 생협 활동하시는 분들 300가구 정도 되시는데, 그 생협 대부분이 성미산 지킴이 활동을 하시는 분들이다. 그러면서 그 분들이 미디어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됐다. 처음에는 그냥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에 찍기만 했는데, 그런 것들이 오마이뉴스나 이런 곳에 틀어지는 과정에서 미디어가 이렇게 중요한 지 몰랐다고들 한다. 미디어센터도 꼭 지어야한다고들 하시고. 마포 지역 안에 속해 있는 대학이 서강대, 홍대, 연대, 이대가 있고 홍대 앞에는 독립영화 사무실들도 많다. 전교조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고. 그래서 이게 시작되면 바로 작업 들어 갈거다. (웃음)

ACT : 성미산이 이화여대 쪽에 있는 산 맞나?

 송덕호 : 성미산이 마포구청 바로 뒤에 있는 산인데, 조그맣다. 내가 민언련에서 활동했지만, 민언련에서 느끼지 못했던 시민운동의 참맛 이랄까? 그런걸 거기서 많이 보고 느낀다. 아랫집 윗집사람이 하는 거니까, 운동할 때 애들 손잡고 나오고, 먹을 거 나눠먹고...

민언련에서의 활동은 따뜻한 그런 게 좀 없는데, 성미산에서 '아, 시민운동이란 게 진짜 이런 거겠다...' 싶더라. 시민 없는 시민운동을 해온 게 아닌가 반성도 많이 하게 되고. 역시 운동은 삶의 뿌리를 둔 지역에서 시작해야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시민 방송 RTV 바로잡기
 

ACT : 그밖에 창립이후 준비중이신 구체적인 사업들은 어떤 게 있는가?  

송덕호 : RTV가 작년 9월에 재개국을 했는데, 올 9월 1주년을 전후로 해서 RTV 문제를 거론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하고 그게 첫 사업이 될 것 같다. 다들 RTV 문제 있다고 말만하면서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니까. 진짜 문제가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ACT : 구체적인 문제가 뭐라고 보는가? 

송덕호 : 퍼블릭 액세스 방송국으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RTV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면서 참여를 안 하는 입장인데, 내부의 인적자원 문제라면 인적자원을 교체해야 할 것이다. 접근하기가 미묘한 점이 있다. RTV가 퍼블릭 액세스를 전혀 안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문제가 있는 것 같고 그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고치는 것이 첫 번째 사업이 될 거다. 내가 보기에는 내부 경영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RTV 직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때 외부에서 도움을 받으려고 다녀봤는데 다들 난색을 표했다고 하더라. 그러다가 노조위원장 하던 친구도 잘리고... 사표를 냈지만 잘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RTV문제 같이 고민 좀 해달라.

그리고 두 번째는 마포 미디어 센터 설립이 있고, 세 번째는 홈페이지를 블로그(web+log)를 이용해서 만드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그 이후는 고민을 해보고 있다. 주로 대안미디어 공간에서 활동하게 되겠지만, 주류 미디어 공간에서의 대응에 대해서도 고민을 해봐야 되고...  

ACT : 같이 실무 활동하는 사람들은 몇 명 정도 있나?

 송덕호 : 실무적인 활동은 나 혼자이고, 창립 이후에 사무실을 내면 한 두 명 활동가를 뽑아서 같이 할 생각이다.

 
 
'우리'가 미디어다!!
 

ACT : 활동했던 민언련 역시 시민언론운동단체이고, 미디어연대 역시 시민미디어운동단체라고 초반에 말했다. 그렇다면, 미디어연대의 슬로건인 "우리가 미디어다"에서 '우리'가 누구냐 라고 했을 때, 시민들이라고 볼 수 있는가? 미디어운동의 주체로서 '시민'은 90년대 이후에 시민운동의 성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일텐데, 그만큼의 한계들도 있을 것이다. 미디어센터도 시민미디어센터일수도 있지만 여성, 노동, 장애, 청소년 미디어센터라고 명칭이 불여 질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시민운동'이 그 개념을 포괄적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실제 이 개념이 사용되는 맥락에서는 좁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럴 때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 그리고 다양한 소수자운동들에 대해서 "시민"이라는 주체가 갖는 한계와 이 운동들과의 연계를 어떻게 모색하려고 하는지 궁금하다.

송덕호 : "우리가 미디어다" 굉장히 도전적이지 않나. 우리가 미디어라는 말속에는 그동안 너네들이 해왔던 미디어 활동을 우리가 부정한다는 의미도 들어있는 거고, 우리가 미디어다라고 선언하는 순간에 우리가 미디어활동을 직접 하겠다는 도전도 들어있는 거고... 거기서 우리라고 하는 것이 굳이 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기존언론에 한계를 느끼고 기존언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모든 계급이나 계층, 스스로 이제 우리 얘기는 우리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디어운동이나 언론운동이 시민운동이라는 테두리 속에 다 들어가기 때문에 시민운동이라고 얘기 한 건데, 꼭 시민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미디어 활용을 통해서 결과물이 지향하는 점이 꼭 정해진 건 아니지 않나. 특별히 계급적인 정체성이나 그런 건 없다. 가능한 한 많은 계급과 계층이 자기 얘기를 하고,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의견과 의사들이 표출되고 교환되고 그럼으로써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 스스로 정해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ACT : 미디어운동의 흐름에는 대충 두 가지 축이 있는 것 같다.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수단으로서 미디어가 사용되는 것이 중요한데 국가권력과 자본에 의해서 그 다양한 목소리들이 소외되고 억압되어 왔기 때문에 그 주류 미디어로부터의 소외와 억압을 극복하는 주류 미디어의 민주화 차원이 하나 있을 것이고, 그것과 연관이 되기는 하지만 보다 본격적으로 정치·문화적인 변화들을 위한 운동의 과정 속에서 미디어가 그런 변화에 기여하는 수단으로서 역할하게 되는 차원이 또 하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좀더 목적의식적인 측면들이 필요해 지는 거고...

그런데, 다양한 요구들에는 역사적으로 한계도 있었다고 본다. 가령 우파들이 주류 미디어들이 워낙 중도적이니까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안" 미디어를 가졌던 역사적 사례들도 있으니까. 그 다양성, 표현의 자유는 그런 것까지도 포괄을 해야하는 역설같은 게 있는 것이고... 이 때 두 번째의 차원,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변화를 의식적으로 조직하고 추동하는 과정이 교차되면서, 그런 부분에서 주체형성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상황은 다양성 자체로서도 중요한 의제라는 생각이 들고, 일정한 방향성 속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송덕호 : 대안TV 할 때는 진보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터넷 방송이 필요하다는 것도 있었지만 퍼블릭 액세스 운동이라는 멀리 내다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각 지역에서 퍼블릭 액세스가 활발히 되는 상태에서 중앙에서 매개가 되는 단체가 있어서 프로그램을 중간에 받아서 배급을 해준다든지, 전국적인 소식을 모아서 뿌릴 수 있는 단체도 필요하다는 생각인데, 퍼블릭 액세스 등을 어떻게 더 진보적인 목소리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에서 그 주체로서 미디어연대가 나왔던 거다. 미디어연대는 보편적인 권리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 직접 미디어를 운영하게 되면 직접 어떤 목소리를 중요시할 것이냐에서 분화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ACT : 일단 현재는 "우리"(우리가 미디어다)나 "연대"(미디어연대)를 대안적 미디어의 다양화라는 큰 틀 속에서 묶어내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후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해나가자.

송덕호 : 지금 강의를 준비하고 있고, 이런 강의들을 통해 사람들이 계속 남아서 활동하게 되면, 미디어를 만들 거고, 그 안에서 색깔들이 드러날 거라고 본다.

ACT : 8월 21일(목)에 세미나를 하고 창립식을 하는데, 대안 미디어운동의 현황과 전망에 대한 세미나 준비는 잘 되고 있는지...

 송덕호 : 아직 발제를 못했다. 게을러서...닥쳐서 하는 버릇은 어디서 들었나 모르겠다. (웃음) □

 

 

  • 미디액트소개
  • FAQ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찾아오시는길
  •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1593번지 우리기술빌딩 13층   대표자 : 이상훈   문의 : 02-6323-6300~1   상호명 : 미디액트
  • 이용시간 : 월~일 / 10:00~22:30 (단, 회원들의 시설 이용 예약이 되어 있을 때에는 24시간 개방) 휴관일 : 매월 첫째주 월요일, 신정, 구정, 노동절, 추석 (공간대여 및 장비대여, 반납을 하지 않습니다.) 라이센스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미디액트가 생산한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센스 2.0 : 영리금지.개작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