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고 3학년 특수학급 미디어교육을 마치고
홍효은(둔촌고 특수학급 미디어교육 보조교사)
조금은 낯선 세계
구미에서 다큐작업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있던 내게 친한 선배의 전화가 걸려왔다. 요는 함께 ‘미디어교육’을 해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는데,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는 일이 쉽지 않은 나로서는 고민이 많이 되었다. 게다가 둔촌고등학교의 ‘특수학급’ 미디어 교육이라니! 물론 나는 보조교사로 그 역할이 크지 않았지만 특수학급 교육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지금껏 지적장애인과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데, 그렇다고 평소에 큰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니야, 보조교사니까 그냥 묻혀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아… 어떡하지? 며칠을 고민하던 찰나에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보았던 그들
예전 울산에서 현대자동차지부의 영상간사로 일할 때, 투쟁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다가 장애인들의 투쟁을 처음 접했다. 아마 그게 내가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그들의 모습이었으리라. 나는 그때 집회장에 가서 그렇게 많은 수의 장애인들이 (물론 그들도 일부였겠지만) 나의 주변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점점 줄어만 가는 복지예산에 길거리로 나선 장애인들. 피켓하나 오래 들고 있기도 힘든 그들을 밀어내고 고개 젓던 공무원들과 전경들. 그걸 카메라로 담던 나. 그들에게 다가서고 섞이고 싶었지만 그때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낀 것은 왜였을까. 그들의 장애는 나에게 왜 그런 불편함을 주었을까? 나는 나중에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비장애인들 중심의 세계이고 장애인들은 이 세계에 자연스럽게 섞여있지 못하다는 것을.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는 이 세계의 아젠다가 되지 못했고 불편함없이 살던 나는 그들의 존재조차 망각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다르지 않다
황다경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첫 수업을 하러 가던 날, 내 마음은 떨리고 있었다. 아니, 그건 사실 정도를 넘어서서 스트레스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교실에 들어서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스트레스는 모두 사라졌다.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다경샘은 아주 편안하게 수업을 이끌어갔고, 나는 점점 편안함을 느꼈다. 지적장애에게 다가서는 일도 비장애인에게 다가서는 것과 많이 다르지 않잖아! 그들의 서툰 표현을 이해하고 조금 더 풀어 이야기 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충분히 생각하고 말할 때 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것! 가르치고 강요하고 그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자세. 나는 첫 수업부터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었다.
영화를 찍고 싶은 아이들
특수학급을 맡고 있는 이호규선생님은 아이들이 미디어 수업을 너무 좋아해서 취업을 나가고 다른 일정이 있어 학교를 안 나오는 고3인데도 학교에 나오는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미디어 수업이 너무 너무 재밌다고 했다.
자신들이 지난 학기 만든 영화를 보는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하다. 그들은 이제, 사진이 아닌 진짜 동영상을 찍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난 기대됐다. 처음 만난 그들, 무슨 영화가 찍고 싶은 걸까?


무슨 이야기를 찍을까?
학생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걸 시나리오로 만들어 내는 과정은 어쩌면 이번 수업에서 가장 통과하기 힘든 과정이었다. 각자 찍고 싶은 이야기를 써낸 내용은 너무나 다양했다.
제빵왕 김탁구의 이야기, 우생순의 배구이야기, 산 넘고 물 건너 총들고 전투를 벌이는 전쟁이야기, 외모지상주의 남자친구에게 버림받고 복수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 등등.
김탁구와 우생순은 이미 있었던 영화니까 찍지 않기로 하고, 전쟁이야기는 현실상 촬영이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나니 외모지상주의 남자친구에게 복수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남았다. 남학생뿐이라 그런지 모두 연애에 관심이 많았고 그 이야기를 찍기로 동의했다.
시나리오 만들기
앉아 있는 학생들이 한마디씩 보태면 다경샘이 칠판에 적어가며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다. 대사가 잘 써지지 않을 때에는 서로 역할을 나누어 연기하며 그 말을 받아 적어 대사를 만들어냈다. 아직은 경험해 보지 않은 연애와 이별, 그리고 복수의 이야기. 때론 시나리오가 산으로 갈 때도 있었지만 (갑자기 시나리오에 김탁구가 등장하거나 여자가 귀신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모아모아 머리를 짜내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머리를 짜낸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나중에 한 학생은 이때의 기억을 두고 ‘미디어수업하며 무엇이 힘들었나?’ 란 질문에 ‘머리가 힘들었다’ 라고 적었다.
그렇게 우리의 시나리오는 주인공 여자와 사귀던 외모지상주의 남자가 여자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바람을 피우고, 그걸 안 주인공 여자가 남자에게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가 되어갔다.
시나리오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학생들은 모두 여학생 역할을 누가 할 것인가를 궁금해 했다. 자신들이 여장하고 연기하기는 싫단다. 그럼 방법은? 전에 함께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다던 근처 명일여고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고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다.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준비됐나요? 레디 액션!
명일여고의 뉴스제작에 우리 학생들이 인터뷰를 해주고, 명일여고 학생들이 우리 영화에 출연하는 것으로 함께 수업을 진행해갔다.
그렇게 시작된 첫 촬영! 레디~ 카메라! 준비됐어~ 녹음! 준비됐어~ 액션!
배우를 맡은 학생들은 긴장해서 계속 카메라만 바라보고 대사는 잊어버리고, 평소 수업에 잘 참여하지 않던 한 학생은 자꾸만 옆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카메라감독은 한숨 쉬며 녹화버튼을 끊어버리는 등 ‘과연 영화가 완성될 수 있을까?’ 싶던 촬영이 시간을 거듭할수록 자리를 잡아갔다. 선생님들이 붙어서 연기지도를 하고, 카메라 감독이던 명수는 나서서 직접 연기 시범까지 보였다.
날은 몹시 춥고 몇 시간을 밖에서 촬영하는데도 ‘언제 끝나요?’ ‘힘들어요’ 불평 한마디 없이 아이들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빠져들어 있었다. 오히려 내가 추워서 덜덜 떨 정도로.
카메라 앞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누군가가 되어 연기를 하고, 그것을 촬영하고, 마이크를 들고 녹음하고, 슬레이트를 치면서 아이들은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의 즐거움을 경험해 가는 것 같았다.
컴퓨터와의 싸움
모둠을 나눠 컴퓨터로 영화를 편집하고 NG모음과 수업사진을 편집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이전 학기에 편집을 배운 적이 있는데다가 각자가 원하는 장면, 사진, 음악을 선택해 편집하는 것에 학생들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편집 도중 저장하는 것을 잊어버려 파일을 많이 날렸다는 것! 부팅을 다시 하고 날라간 만큼 다시 편집을 겨우 해놓으면 또 다시 컴퓨터는 먹통이 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 컴퓨터를 켜서 또 편집을 하고… 그래도 어렵사리 완성된 영화는 무척이나 만듦새가 있었기에 우리 모두 그것을 흡족해했다.


그리고.. 개봉박두!
2011년 12월 12일 강동지역 특수학급 미디어교육 상영회가 열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문현고를 찾아온 학생들, 몇몇 그들의 친구들과 가족들. 직접 무대에 서서 공연도 하고, 한 해 동안 만든 영상물을 보고 웃고 떠들면서 그렇게 우리 교육의 막이 내렸다.
집에선 철부지 말 안듣는 아들이 학교에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고 무대에 서서 관객과의 대화도 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들은 종종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한없이 들떠 있었다.
‘우린 정말 잘했어. 너희도 잘했어. 그래도 우리가 제일 잘했어!’
같은 말 같으면서도 다른 말 같은 이 말을 아이들은 이날 즐겨했다. 결국 자기 학교가 만든 영상이 최고였다는 장난 섞인 이야기이겠지만 그렇게 자신이 만든 무언가에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들은 아름다웠다.
나는 상영회를 지켜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그들의 모습을 촬영했다. 그들의 그 또렷했던 음성과 눈망울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다.


그 다음 페이지
이렇게 한 학기의 두려웠던 수업이 모두 끝이 났다. 말 한마디 걸기 힘들었던 시작이었는데 이젠 다시 아이들을 볼 일이 없다는 것이 아쉽고 짠하다. 미디어수업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모두 다음 달이면 졸업을 하고 사회 속으로 나갈 것이다.
어쩌면 그 사회는 이번 미디어수업처럼 자신의 이야기 방식을 이해해주거나 기다려주지 않는 세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그 세계에 존재하게 하기 위해 그들은 내가 처음 울산에서 봤던 이들처럼 피켓을 들고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뒤돌아서서 헤어지며 왠지 아쉽던 마음. 아니, 어쩌면 왠지 미안했던 마음. 그것은 우리가 아직은 그들과 이 세계에 함께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도 그들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척박한 사회로 한발 내딛는 그들에게 영화를 찍으면서 느꼈던 즐거움과 자부심이 큰 힘이 될 수 있길! 언젠가 성인이 된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