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미디액트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매주 수요일 마포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함께 마포 지역 이주 여성 미디어교육 ‘그녀들의 자기소개서’를 진행했습니다. 책과 사진을 통해 이주 여성과 만난 교사, 넝쿨님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이주여성들과 만나기 “그녀들의 자기소개서”
넝쿨(미디액트 미디어교육 교사)
올해 추석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마도 ‘결혼은 언제하니?’ 였던 것 같다. 아직 대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스물여섯밖에 안됐는데도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성화다. 대체 결혼이 뭐길래,
슬슬 결혼 압박에 시달리기 시작해서인지 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구체적 삶이 궁금했다. 낭만적으로 말하면 사랑을 찾아 머나먼 이국에 정착한 사람들, 혹은 간간히 들려오는 가정폭력과 같은 우울한 소식들과 이 사회가 안고 있는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들을 생각하면, 결혼 이주 여성들은 이중적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들이었다. 그녀들이 여성이라는 것과 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내가 이 사회에서 만나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리스트에 ‘이주 여성’이라는 이름을 올리게 했다. 그런데, 내가 그녀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내가 열심히 찾아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흔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 미디어 교육을 하면서 그런 기회가 생긴 것이다.
두근두근
이주 여성들과 진행한 교육은 나에게는 특별히 준비가 더 많이 필요한 교육이었다. 그녀들이 외국에서 온 사람들(낯선 이들)이라는 것과 이번 교육에서 중심이 되는 매체가 ‘책’ 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 몇 번의 미디어교육을 했지만 늘 영상매체를 다루는 교육이었고, 장비나 익숙하지 않은 영상 언어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들이 많았다. 그래서 ‘좀 더 일상에 가까운, 생활 속의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을 할 수 없을까?’라는 것이 나의 얇은 고민들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책이라니! 휴대폰이라던가, 라디오라던가 좀더 ‘미디어스러운’ 것들이 아니라 아주 고전적인 표현 영역인 ‘책’이었다.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모든 매개물, 매체는 ‘미디어’라는데 내가 늘 다루어 왔던 미디어는 영상매체에 한정되어 있었으니 이 또한 새롭기도 했다. 물론 우리가 만들기로 했던 책은 ‘사진 책’ 이긴 했다. 사진과 책, 올드미디어의 포맷으로 만드는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의 짬뽕이라고나 할까.
나 또한 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교육을 시작하기 전에 미디액트 교사모임에서 진행하는 책 만들기 워크숍에 참여했었다. 나 스스로도 손재주가 없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색지를 고르고 종이를 자르고 붙이고 하면서 내가 얼마나 미적 감각이 떨어지는가, 내가 얼마나 손재주가 없는가를 다시 한 번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아, 이런데도 책을 만드는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이주여성 미디어교육을 여러 차례 진행해봤던 선배교사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듣기도 했다. 이주여성들은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단지 한국어로 하는 의사소통이 불편할 뿐이라고. 잘 알아듣지 못해서 아이들을 대하듯이 대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주여성들은 충분히 자기 표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고 언어라는 장벽으로 인해 표현이 불분명해지는 지점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고 이 이야기는 교육이 끝날 때 까지 내 머릿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언어 때문에 표현이 서투를 뿐이다. 장벽이 되는 언어를 장벽이 아닌 조건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의사소통은 훨씬 서로를 가깝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 점은 아마 다른 이주민 교육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더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뒷받침 되어야 할테지만.
그리고서 부족한 부분은 함께 교육을 진행하는 교사와 기획자에게 기대기로 마음먹었다. 설레는 마음이 조금씩 진정될 즈음, 교육은 시작되었다.
내가 만난 그녀들
우리 교육에서 거의 모든 과정을 다 마치신 분들은 다행히도 다들 한국어를 잘 하셨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언어로 인한 장벽을 크게 느끼지 않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각자 만들 책을 기획하고, 손으로 책을 만들고, 꾸미고, 만든 책을 간단히 동영상으로 만드는 과정까지, 그래서 발표회로 마무리 하는 과정까지 할 수 있었다.
각자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씩 가지고 계셨고 다들 사진을 잘 찍으셨다. 우리 교육은 기술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찍어 온 사진을 함께 보면서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등을 이야기했고, 집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며 아이들의 모습, 가족끼리 친구끼리 놀러갔을 때의 모습들도 엿볼 수 있었다.

참여자들은 모두 손으로 만드는 것을 잘 했다. 책을 만들 때에도 교사 워크숍에서 했던 것보다 속도가 훨씬 빨랐고 다들 미적 감각이 뛰어나서(!) 만든 책에 자투리 실을 모아 술을 만들어 달거나 각종 스티커나 집에서 아이들이 더 이상 쓰지 않는 책에 있는 그림을 오려 붙이는 등 재미있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책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이번 교육처럼 편하고 즐겁게 이야기하며 했던 교육은 없었던 것 같다. 서로의 이야기들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며, 구성안이라는 압박보다는 편하게 수다를 떤다는 느낌이 강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려웠던 점, 고향에 있는 그리운 가족들, 현재의 가족들,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의 어려움, 아기를 낳을 때의 고통 등등. 그런데 사실, 우리 교육에서는 공식적인 대화보다는 비공식 수다가 더 많았다. 이런 저런 관계에서의 어려움이나 출산의 고통 등을 이야기 했지만 만들어진 책 안에는 대부분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내가 만난 그녀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낭만과 현실이 함께 있었다.
바쁜 그녀들, 그래서 어려운 교육
그녀들을 만나는 시간은 늘 유쾌하고 즐거웠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갔고, 각자 자기 삶의 단면들을 나눌 수 있었다. 교육 시간은 즐거웠다.
그런데 이번 교육의 어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녀들을 만나기가 너무 힘든 것이다! 우리 교육 전에는 한글 교실에서 한글을 배우고 오고, 우리 교육이 끝나기도 전에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하고, 어느 날은 반찬을 만들어야 해서, 어느 날은 아이가 아파서, 어느 날은 시아버지가 아파서 못 온다. 그녀들을 만나는 건 즐겁고 좋은데, 그녀들은 늘 너무나 바빴다. 생각해보면 엄마들은 늘 바빴던 것 같다. 아이들 챙기랴, 가족들 챙기랴, 먹을 것 챙기랴, 집안 살림 챙기랴, 거기다가 일을 하거나 자기 공부를 하는 일까지 겹치면 정신없이 하루가 돌아간다. 그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늘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 시간을 들여서 온전히 자기만의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임신을 하셔서 막바지에 못 나오신 분도 계시고 가족들과 자신의 고향에 가셔서 못 오신 분도 계신다. 그녀들의 몸은 그녀들만의 몸이 아니었다.
그래서 참여자들의 들고 남이 심했다. 처음부터 함께 하셨던 분 중, 마지막 발표회에 나오신 분은 두 분밖에 안계셨다. 중간에 한두 차시만 함께 하시고 가신 분들도 계시고, 굉장히 재미있어하고, 열의를 보이셨던 분들 중 취업을 하게 돼서 못 오신 분들도 계셨다. 그런 일들은 교사와 기획자들의 힘을 쭉 빼놨다. 중간부터 오신 분들은 이미 진행한 부분은 놓칠 수밖에 없는데 책을 만들지 못하면 우리 수업을 함께할 수 없고, 그러다보니 모둠을 나누어서 정신없이 두 가지 수업을 한 번에 진행하고... 차라리 새로 참여자가 오는 것은 나았다. 각자의 사정 때문에 참여자 수가 너무 적은 날에는 자괴감에 빠졌다. 우리가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수업이 재미없는 것은 아닐까? 수업 시간에 너무 부담되는 내용이 있었나? 등등... 우리의 수업이 그녀들에게 맞게 완전히 잘 짜여 있었다면 또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이 수업의 내용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을 것 같다. 할 일이 너무 많은 그녀들에게, 일종의 개인적인 취미활동 같은 느낌의 이 교육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만으로는, 이것만으로는 안 돼
교육을 마칠 즈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들의 사회활동을 보장해주는 것은 사회 전체와 가정의 분위기라는 것,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가족의 구성원들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녀들의 노동을 분담하고, 그녀들 스스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길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육아와 가사가 ‘여성’의, 특히 아내와 며느리의 몫인 것처럼 이야기되지 않고, 가정을 꾸려가는, 사회를 꾸려가는 사람들이 함께 책임지는 것이라는 마음이 사회 안에 고르고 넓게 퍼져있게 하려면 미디어교육에서도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테지만, 다른 다양한 영역들과 함께 가야할 것이다. 물론, 미디어교육을 통해서 스스로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면 가장 좋을 것이다. 더불어 교사들이나 기획자들은 어떻게 하면 교육을 더 충만하고 재미있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그래서 그녀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미디어 교육이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야겠지만! □
[필자소개] 넝쿨(미디액트 미디어교육 교사)
2006년부터 카메라를 들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미디어 교육을 시작했고,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