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한라산과 오름, 용암동굴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이 곁에 있어 좋았다. 그리고 깨끗한 물과 공기 따뜻하고 시원한 계절의 바람을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제주도 어디에 있든 바라보면 언제나 그 곳에서 나를 품어주던 바다였다. 바다를 보며 자랐다는 것이 나에게 이토록 소중한 경험인 줄은 섬을 떠나기 전까지 알 수 없었다. 서울에 올라와 20대가 훌쩍 지나고 나서야 제주도 바다의 파란 색깔이 한츰 더 눈앞에 다가와 아른거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곳은 이제 나의 유년 시절을 추억하는 공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도 알게 됐다. 제주도의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앞으로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출렁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태어날 아이들과 다시 또 태어날 아이들을 항상 품어줄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한다.
제주도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미 2000년도부터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건설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2007년에 강정마을로 최종 결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2011년 여름 강정마을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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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강정마을에 내려간 것은 어찌 보면 나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제주도가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미 서울에서 터전을 잡기위해 애쓰고 있는 30대 독립영화인에 '불과'했고 나의 작품 활동과는 별개로 오로지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이것저것 닥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이었기에 쉽사리 내려갈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주도에서 사시는 고모의 전화를 받았다. 고모는 나에게 강정마을의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하셨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바로 제주행 티켓을 끊었다. 너무 순식간에 행한 일이라 잠깐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았다.
독립영화인'답게' 카메라를 챙겨갔다.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서 재밌는 일을 벌이고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부풀어 있었다. 나는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기도 하지만 미디액트 미디어 교육 교사로서 미디어 교육을 하러 다니기도 한다. 주로 미디어 교육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곤 하는데 디지털 카메라를 주로 교육장비로 활용하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 내려가면 강정마을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짧고 굵은 미디어 교육을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내려갔다.
미디어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저 아이들에게 디지털 카메라를 만져보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강정마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처럼 아이들은 발언할 기회도 학교가 아니면 얻기 힘들고 더욱이 어른들이 자주 쓰는 언어표현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그저 아이들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준다고 해서 잘 전달이 될 리 없다고 생각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면 어른들과 다르지 않게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정 마을의 아이들을 대체 어디서 만난단 말인가?
강정초등학교 4학년 1반, 그리고 박명아 선생님
박명아 선생님을 만난 건 참으로 우연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인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해군기지 공사현장 입구에서 1인 시위하러 세 명의 아이들을 이끌고 나오신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나는 주저하지 않고 속사포처럼 내 생각을 선생님께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떨리는 심정으로 답변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흔쾌히 좋다고 하셨고 자기가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며 되레 물어보시기도 하였다. 그렇게 선생님과 약속을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고 교육장비 및 교육커리큘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반 학생들 모두가 참여하기는 어렵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이미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가 어른들 사이에서 찬성과 반대로 나뉘었기 때문이었다. 찬성을 하는 부모님의 아이들과 반대를 하는 부모님의 아이들 이렇게 강정마을은 어처구니없는 반목을 낳고 있었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은 찬 반 문제에서는 자유롭다고 박명아 선생님은 이야기 하셨다. 나 역시 그런 아이들의 순수함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사진으로 담는 나와 강정마을
다시 내려가 아이들을 만난 건 토요일 오후, 계속 장마가 이어지던 터라 교육날도 비가 올까 노심초사 마음을 졸였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오히려 사진 찍기에 적당한 흐린 날씨였다. 나는 사실 날씨만 걱정한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할는지 괜히 나 혼자 마음 편하자고 이러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하지만 어쨌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신념 아닌 신념이 이런 걱정들을 모두 머릿속에서 지워낼 수 있게 하였다.
이번 교육의 핵심은 얼마나 사진을 잘 찍는가 혹은 좋은 사진을 찍어보는 등의 기술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닌 사진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사진기와 관련된 내용은 반셔터까지(사실 이것도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이야기하고 대부분 무엇을 찍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게끔 하는데 주력했다. 10명의 학생들의 둘씩 짝을 지어 출사를 나가기로 하였다. 사진의 주제는 '강정마을에서 내가 00 하는 곳' 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곳, 내가 싫어하는 곳, 내가 자랑 하고 싶은 곳 등을 정하고 그 공간의 모습을 담아도 좋고 그 곳의 사물을 담아도 좋다고 하였다. 특히 그 공간에 자신의 주인공이 되어 찍거나 찍히면 더욱 좋다고 방향을 잡아주었다. 그 다음에는 온전히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아이들의 바다
아이들은 대부분 강정마을 포구 근처 중덕해안가에서 사진을 찍었다. 중덕해안은 구럼비 바위(바다 깊은 곳에서 부터 서서히 분출된 용암이 굳어 생긴 용암 바위, 오랜 세월 바닷물에 쓸리고 닳은 까닭에 표현이 부드러워져 맨발로 걸어도 전혀 아프지 않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붉은발말똥개(멸종위기종 2급 생물로 보호대상 해양생물)의 서식지이기도 하다. 이런 아름다운 바다가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불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중덕해안 끝 바다 앞까지 거침없이 나갔다. 그리고 정말 쉬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가끔 아이들의 사진을 지켜봐주기도 하고 나 역시 이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멀리서 바라보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중덕해안근처 해군기지 건설현장역시 집 앞 놀이터 마냥 거침없이 들어갔다. 건설현장의 기자재나 포클레인에 마구 패어진 웅덩이들이 아이들을 다치게 할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왜 이곳을 찍느냐 물었더니 내가 싫어하는 곳이라 찍는다고 했다.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지친 기색 없이 바로 강정천으로 이동했다. 강정천은 제주도의 일반하천과 달리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강정천에는 1급수 어종인 은어가 서식하고 있기도 하다. 산란기의 은어 떼들이 강정천으로 올라오는 장면은 보기드믄 장관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강정천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아이들은 그냥 아이들이다. 뛰어놀고 또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이다. 강정천 '바로' 옆에 해군기지 건설현장이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강정천은 해군기지공사를 통해 배출되는 오물과 쓰레기들로 오염될 것이 뻔하다. 아이들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현실로 다가올 거라고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강정의 아이들과 미디어
사진을 통해 미디어 교육을 진행하면서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진과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사진영화 수업도 진행하였다. 편집은 내가 하였지만 이야기 구성과 소리녹음 등 전반전인 활동은 다 아이들이 진행하였다. 그리고 다음날 편집한 사진영화를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무척 재밌어 했고 나 역시 아이들의 이해력과 구성력에 새삼 놀랐다.
짧았던 미디어 교육이 끝나고 아이들과 헤어진 이후 나는 또 다른 미디어 교육을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는 영화 만들기를 해볼까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미디어를 도구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양한 순간의 자신들의 모습을 기록하고 그 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길 바란다.
글쓴이 권효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미디액트에서 미디어교육 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