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미디액트와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가 함께 시작했던 여성미디어교육 ‘시네마여인네’가 5년차를 맞았다. 이제는 여성노조 서울지부의 영상동아리로 어엿하게 자리잡아, 미디액트의 도움없이도 알아서 척척! 교육을 진행하는 단계가 되었다. ‘시네마여인네’ 동아리의 교사로 쭈욱 활동하고 있는 손경화 선생님에게 ‘시네마여인네 시즌 5’ 교육 8개월의 후기를 들어본다.
“선생님, 선생님 혼자 교육 하는 거 아니잖아요.”
-시네마 여인네 시즌 5 (전국여성노조서울지부 영상동아리) 교사, 손경화-

<상영회에서 부를 노래 가사를 바꾸고 있다.>
뭐라고 써야 할까? ‘벌써 5년’은 식상할 것 같고, 교육 동안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나열하고 적당히 포장해야 할까? <시네마 여인네 시즌5> 소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이 마음을 잘 전달하고 싶은데, 생각보다 어렵다.
5년 전, 미디어교육이 뭔지도 모르고 전국여성노조 서울지부에서 하는 미디어교육에 보조강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강사인 내가 한 마디 하면 열 마디 하시던 참여자 분들을 만나고 적잖이 당황했다. 말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만 모인 곳인 줄 알았다. 어떻게 하면 참여자분들의 말을 적당한 선에서 끊고, 준비한 교육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가 나의 교육 평가서의 중요한 고민이었다. 그 외에도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하시는 분들 대신 내가 편집을 해도 되는 걸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는 참여자에게 슬쩍 적당한 이야기를 추천해줬는데 문제가 있는 걸까? 동영상제작강좌와 미디어교육이 뭐가 다른 걸까? 노조에서 하는 교육이라면 여성노동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등 교육을 하면서 드는 크고 작은 고민들이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교육을 하면, 아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뭔가를 하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인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의 나는 그걸 잘 몰랐었다. 내가 교육 준비를 더 잘하면, 미디어교육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재밌는 커리큘럼을 짠다면, 교육이 더 잘 될 거라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교육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어쩐지 가기 싫고 부담되는 날도 많았다. 교사 워크샵 때마다 교육은 강사 혼자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강사도 한 명의 교육 참여자로 함께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제로 교육을 할 때는 강사로서의 책임을 과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시네마 여인네만 5년.
오버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스스로 과하게 만들어 낸 고민이 해결되지 않자, 미디어교육이 마냥 재밌진 않았다. 때론 직업도 아닌데, 참여자들이 어렵게 시간을 내어 몇 개월 동안 힘들게 영상으로 이야기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이제 겨우 5년 해놓고 어쩐지 시들해져버린 나에게, 이번 시즌 참여자들이 말씀해주셨다. “선생님! 선생님 혼자 교육 하는 거 아니잖아요.” 물론 참여자분들이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행동과 표정이라는 미디어로 나에게 넌지시 그런 말을 하였다. 나는 그녀들과의 8개월 교육기간을 통해 교사도 교육의 참여자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 이번 시즌 참여자분들을 간단히 소개해 드릴 테니, 이 분들이 한참 나이 어린 강사에게 어떤 방법으로 그 말을 건넸을지 짐작해시 보시라.


<편집 중! 왼쪽이 마루, 오른쪽이 삐삐>
이름: 김춘자
별명: 마루 (대청마루처럼 넓고 시원해서 쉬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의미)
나이: 꽃다운 60대
작품소개: ‘놀이터에서 놀다’ 이사 간 집 앞 놀이터에서 만난 사람들, 보이는 풍경을 담은 작품이다. 게이트볼 치는 어르신들부터 립스틱 바르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모습을 모습을 마루만의 시선으로 표현.
기네스북: 시네마 여인네 시즌3, 3.5, 4,5까지 모두 네 번의 시즌에 참여하여서 네 작품을 만든 시네마 여인네 교육의 최다 참여자. 시네마 여인네의 웬만한 역사는 다 알고 계신다. 교사들은 이 선생님 때문에 매번 새로운 커리큘럼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압박에 시달린다. 영상제작이 너무 어렵다는 참여자들에게 “나는 처음에 삼각대도 못 폈다. 촬영도 못해서 선생님들이 달려왔다.”며 산 증인의 역할을 자처하심. 이젠 교사가 다음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예측하는 경지에 이름.
기억 남는 에피소드: 시즌 3 교육 하던 중에, 강사들을 중국집에 불러 맛있는 걸 사주시며,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고 죄송하다고 하셨던 일. 그 때 괜히 낙담했다. 이렇게 오래 남으실 줄 몰랐다.
이름: 정란희
별명: 삐삐 (닮았다)
나이: 30대처럼 보이는데 40대일 수도 있음.
작품소개: ‘유쾌한 진군’ 4대강 반대 집회에 갔다가 거기 참석한 사람들의 밝은 표정과 진지함에 끌려 4대강을 주제로 정함. 낙동강 순례를 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담은 작품. 시네마 여인네 사상 가장 멀리 가서 촬영해 온 작품.
기네스북: 시네마 여인네 사상 교육에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함. 사진 수업을 한다고 해서 디카 장만, 편집을 위해 외장하드 장만. 투자한 게 아까워서 중간에 그만 둘 수 없었다고...
기억 남는 에피소드: 참여자들과 같이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 날 삐삐의 애인님이 왔었다. 시네마 여인네 5년 동안 참여자분들의 남편이나 애인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교사(나)가 상영시간을 잘 못 알아서 허탕. 결국 영화 티켓만큼 비싼 차만 마시고 헤어졌다. 간식을 담당했던 삐삐 덕분에 매번 맛있는 걸 먹었음. 교육 초반 30분은 일단 먹으면서 수다를 떤다.

<미디액트에서 편집 중! 왼쪽이 재키, 오른쪽이 민들레 >
이름: 최성희
별명: 재키 (닮았다. 엄마의 별명도 재키였다고.)
나이: 역시 30대처럼 보이지만 40대일지도 모른다. 삐삐와 동갑.
작품소개: 의료급여 관리사인데, 딸도 그 일이 뭔지 모르는 게 속상해서, 자신의 일을 소개하는 ‘엄마는 의료급여관리사’를 만들었다. 진솔한 내레이션이 인상적.
기네스북: “선생님 저 못해요. 못하겠어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참여자. 첫 날부터 마지막 편집날까지 거의 매일 저 말을 하신 듯. 보통 참여자분들이 이런 말을 하면 중도하차로 이어지기 때문에 걱정이 많이 되는데, 재키는 평소 행동이 워낙 책임감 있어 보여서 아무도 걱정 하지 않았다.
기억 남는 에피소드: 상영회를 하는 날, 음식은 잘 만들지 못하지만 준비는 하겠다며 월차를 냈다. 바빠서 편집할 시간도 부족한 분이 귀중한 월차를 상영회에 사용함으로써, 상영회의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 상영회를 보기 위해 와준 엄마에게 고마움을 전하다가 울먹임. 당당한 외모에 가려졌던 (평소 본인이 주장한) 여린 마음을 증명하였다.
이름: 하조남
나이: 역시 꽃다운 60대
별명: 민들레 (민들레 꽃을 좋아해서)
작품 소개: ‘새 주인 만나다’ 버려진 물건이나 안 쓰는 물건을 모아서 청계천에서 파는 동생 부부를 찍은 다큐멘터리. 원래는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는 친구를 찍을 생각이었지만, 섭외가 안 되어서, 연습 삼아 동생을 찍음. 다른 참여자들이 신기하고 재미있다고 추천하여서 급 변경된 주제였다. 작품 곳곳에 민들레의 따뜻함이 묻어난다.
기네스북: 편집하기 전에 구성을 잡고 내레이션을 써야 하는데, 쓸 시간이 없어서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함. 시네마 여인네 사상 가장 숙제를 열심히 해 오시는 참여자. 참여자분들 대부분이 직장을 다니시기 때문에 집에서 뭔가를 해오는 게 사실 불가능하다. 그래서 숙제를 가능하면 안 내어주고, 내어주더라도 해오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는데, 첫 날 민들레가 숙제를 너무 열심히 해 와서 깜짝 놀람. 이후 다른 참여자들도 분발!
기억 남는 에피소드: 미디액트에서 하루 종일 편집할 때, 새벽 5시에 일어나 약밥을 해 오심. 김장김치, 미역국으로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남은 것은 싸주심. 엄마 짐이 많아서 배달해주러 왔다가 밥도 못 얻어먹고 돌아서던 아드님의 얼굴 표정이 아직도 생생함.

<상영회 날, 친구, 가족, 동료들을 초대했다.>

<영상 만드는 것보단 쉬웠어요. 짱 맛있었던 상영회 음식>

<상영회를 마치고! 나, 민들레, 허브(서울지부 지부장님), 삐삐, 재키, 마루는 친구들과 먼저 갔다.>
생각해보면 이전 시즌 참여자분들도 늘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민을 나누고 맺혔던 이야기들을 들어주면서, 교육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거라고. 다만 교사인 내가 제대로 듣지 못했었다. <시네마 여인네>는 2006년 처음 시작해 5주년 이라는 쉼표를 찍었다. 10주년 20주년 오래할 거란 장담은 못한다. 우린 늘 마침표를 찍을까 말까 흔들렸으므로.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영상제작교육이 노조와 각 참여자들에게 일회적인 체험에 불과해진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고 영상으로 보여주었던 순간들은 온전히 남아, 우리들의 삶을 감싸고 있을 거라 확신하므로.
덧) 5주년 기념 thanks to : 시네마 여인네의 든든함 미디액트, 기획자 박혜미쌤, 함께 하셨던 교사 선생님들, 반이다, 허브(고구마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