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노인복지센터 미디어 기초 교육 ‘디카로 사진 영화 만들기’ 교육 에세이
어르신의 인생 그대로가 멋진 영화입니다.
미디액트 미디어교육 교사
석선영
작년 겨울에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미디어교육 심화 과정에서 어르신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는 곳에 참석했었다. 그때까지 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만 미디어 교육을 했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미디어 수업과 작품에 호기심이 많았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나 스스로도 ‘노인은 미디어 표현하는 것이 서툴 것’이라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편 한 편 영화가 상영될수록 점점 어르신들의 작품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여보게 친구’라는 영화에서는 눈물까지.....어르신들의 작품은 정말 훌륭했고 감동적이며 깊이가 있었다. 어르신들의 시선과 마음을 잘 표현한 영화를 보면서 평소 이해가 되지 않던 우리 시어머니의 마음까지 이해될 정도였으니.....
그렇게 작년 상영회에서 노인미디어교육의 매력에 이끌려 올 해에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미디어 기초 교육인‘디카로 사진 영화 만들기’에 보조 강사로 참석하게 되었다.
첫 만남
어르신과의 첫 수업 시간은 자기소개를 하며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자신과 관련된 단어를 적고 사람들에게 발표하고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묻고 답했다. 수업에 참석한 어르신들은 평균연령이 70대 후반으로 비교적 높으셨다. 하지만 어르신들 한 분 한 분이 참 점잖으시고 똑똑하시며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아주 강하신 것 같았다. 강사의 강의 하나하나에 집중력 있게 귀 기울이는 진지한 눈빛, 그리고 토론 시간에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 하시며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참 멋있으셨다. 산만한 어린이와 청소년 미디어 교육만 해오던 나로서는 캬~~ 수업 분위기 정말 끝내준다.
아리랑 곡선 그리고 내 인생의 사진 한 장
우리 수업의 목표는 총 20차시로 디카 사진으로 자신의 삶이 담긴 짧은 영상을 만드는 것이다.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어르신의 삶을 곡선으로 그려 보는 ‘아리랑 곡선’ 수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사진 1장을 뽑아서 이야기를 적어나가는 수업이 있었다. 어르신들은 흰 도화지에 줄을 긋고 0과 80이라는 숫자를 그으시고 80평생의 삶을 회고 하시며 곡선을 이어 나가셨다. 어떤 분은 “결혼 하기 전에 만났던 여인의 이야기도 적어도 되나요?”하고 물어 보셨다.“당근이죠. 젊으실 적 로맨스 정말 궁금한데요^^”
어르신들은 오랫동안 앨범 속에 묵혀둔 사진을 보고 고르고 그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흐뭇한 표정들을 보이셨다. 000 어르신은 이산가족상봉 때 만났던 북에 있는 동생과 헤어질 때 동생의 일그러진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또 다른 어르신은 베트남 파병 나갔을 때 만났던 베트남 아가씨와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머니의 병환으로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 외에도 어르신들의 한 장의 사진 이야기 속에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어르신들은 과거 사진을 통해서 과거를 추억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몹시 행복해 보였다. 젊은 시절 사진을 보실 때는 마치 그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드시는 거 같았다.
나의 인생을 성찰하고 드러내는 어려움
영화 제작에 대한 워밍업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영상 기획에 들어가자 어려워하시며 한 분 두 분씩 빠지는 일이 생겼다. 디지털 카메라를 켤 줄 도 모르시던 어르신들이 사진 찍는 법을 겨우 익히고 나서 바로 또 작품을 만들려고 하니 부담이 되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인생에서 이야기를 소재를 건져 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공개한다는 것, 그 역시 부담되는 일 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미디어 교육은 그저 수동적으로 강사가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기술만 익히는 수업이 아니다. 수업 시간 내내 자신을 성찰하고 드러내고 생각하고 고민하고 나누며 참여하는 수업이다. 그래서 힘겹지만 매력적인 수업이 아닐까? 특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이 필요한 어르신들께는 더욱더 의미 있는 수업인 것 같다. 하지만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를 떠올리기 조차 싫어하시는 어르신도 있고 어떤 분은 아픈 과거를 교사에게는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영화에는 담기 싫다고 하시는 분도 있다. 교사와의 오랜 대화 끝에 영화로 끌어낼 수 있는 분이 있고 끝내 끌어내지 못하는 분도 있다. 이 부분은 마치 교사가 내담자를 상담치료 하듯 충분하고 깊은 대화가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주어진 수업 시간 안에서 두 명의 교사가 어르신 한 분 한 분 깊은 대화를 하며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늘 이 부분이 아쉽고 그 아쉬운 부분은 여과 없이 그대로 작품에 드러난다.
어르신들의 삶이 묻어나는 9편의 이야기
다행히 9분은 녹음과 편집까지 무사히 마치시고 9편의 작품이 나왔다. 엄마를 잃은 쌍둥이 손자를 돌보는 이야기, 병환으로 돌아가신 남편에게 쓰는 편지, 인사동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는 이야기, 개발로 사라져 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이야기, 북에 두고 온 동생을 이산가족 상봉 때 만난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담담히 정리하고 후손들에게 유언처럼 남기는 이야기, 탑골 공원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현 시대를 바라보며 드는 생각을 표현한 이야기 들이 모여 9편의 작품이 되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강당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르신들의 영화가 상영될 때 상기된 어르신들의 표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한 분 한 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도 받는 시간도 가졌다. 한 어르신은 아내와 가족들에게 자랑하고 싶다고 오늘 상영회 사진을 메일로 꼭 보내달라고 하셨다. 000어르신은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한편 가슴 뿌듯한 마음이라며 정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좀 더 챙겨 드렸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3개월 동안 어르신과 함께 한 그동안의 과정이 오늘의 시사회를 마지막으로 마무리 된다고 생각하니 그 동안 수업 과정도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인 것 같다. 디카 작동법, 아리랑 곡선, 영화 기획, 콘티 그리기, 컴퓨터 편집 어느 하나 어르신들에게 쉽고 만만한 수업이 없었다. 중간에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열정을 다하신 어르신들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 어르신이 말씀하신 말이 내내 기억에 남는다.
“아리랑 곡선을 그리라고 할 때 머리가 멍해 졌어요. 내 80평생 과거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나에 대해 성찰하고 공부도 하는 계기가 됐어요. 나의 존재의 근원, 나의 조상, 그리고 나의 지나온 삶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후손에게 남기는 유언이 됐어요. 내가 죽어도 이 영상은 영원이 남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