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싸면서
어제 미디액트 사무실에 있던 짐을 싸야했습니다. 1월31일로 우리는 이 공간을 나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상미디어센터 운영 주체에 급조된 그리고 ‘공모’에 전문성이 있는 (사)시민영상문화기구가 선정되고, 저희가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대강의실 한 켠에 있던 책 박스를 옮기면서, 울컥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교육과 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들어낸 책과 자료들을 모두 옮겨둘 곳이 없어, 가져갈 수 있는 소량의 분량만 짐으로 싸야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과 자료들을 나누어주지 못했는데, 8년의 땀과 열정이 이 책들 속에 들어있는데, 7살 아이에서 머리 허연 어르신들의 얼굴들이 담겨 있는데, 아름다운 서투름과 창피함도 있는데, 보다 나은 미디어센터를 만들고자 했던 밤샌 지혜가 있는데......
대충 싸여 있어 투두둑 터지며 떨어지는 책을 보며 괜한 신경질이 더 나기도 하고, 무거운 책상자를 옮기기 위해 던지고, 발로 밀고 하는 제 모습이 스스로를 짐짝 취급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맺혔나봅니다. 아직 이 책들을 전해주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좀더 빨리 나누어 주었어야 하는데, 왜 지금 짐을 싸야 하는지, 억울하고 몸이 떨려왔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나의 분신 같은 것을 왜 내 손으로.......
차분한 마음을 갖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공모에 참여하고 그 결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공모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업주체를 넘기기에 급급한 일정으로 진행되고, 깊은 생각과 철학이 반영되지 못한 조속한 선정 결과를 내고, 그 결과도 미디어센터의 운영능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가슴 속 분노가 한껏 차오르고 있지만, 여기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필요하고, 다른 하나는 떠나지 않으면 미디어센터는 파행적 운영이 불가피하고 그 책임은 거꾸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정당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말끔히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빌미를 안겨주는 셈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야속하기도 하고 이렇게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적 문제를 제외하고 미디액트가 이곳에 있어야 할 정당한 권리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더라도, 그 작은 법적 문제까지도 완벽히 쟁취해야 합니다. 꼼꼼히 조여 오는 막강한 힘에 긴장하면서 맞대응하기 위해서, 차분하면서도 강하고 오래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직도 몸이 떨립니다. ‘미디액트 개관부터 8년동안 있었습니다. 그동안’ 하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수많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그동안’이란 말이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 머무는 말이 되면서부터 ‘그동안’ 이란 말이 무섭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 - 정말 하루가 이렇게 길고, 빠르게 지나간 적은 없습니다. - 회원분들, 수강생 여러분들, 어르신들, 그리고 많은 분들이 미디액트 게시판에서, 블로그에서, 기자회견장에서, 또 다른 공간에서 보내주신 감동의 언어와 힘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독립영화감독이 ‘미디액트는 우리의 꿈의 공간이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미디액트는 영진위나 문화부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탭들의 것도 아니고,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것도 아니고, 바로 꿈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디액트를 사랑하고 지키고자 하는 여러분의 공간이며, 영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공적 영역이며, 함께 만들어 가는 미래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이 공간은 떠나가지만, 미디액트는 계속되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꿈의 공간을 만들어가려고 하는 여러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앞으로 흘리는 저의 눈물은 함께 만드는 꿈의 공간의 행복한 눈물이 될 것입니다.
오정훈(미디액트 스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