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위는 블랙리스트 피해자 없는 조사보고서 폐기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새로운 기구를 구성하라
지난 2021년 3월 9일(화) 오후 2시 ‘영화진흥위원회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 활동경과 보고서 발표회’(이하 발표회, 줌을 통한 온라인 회의)가 있었다. 2018년 4월 당시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이 과거 정권 내에서 행해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부당행위에 대한 조사와 재발 방지를 약속한 지 3년 만에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과거사특위, 위원장 주유신 당시 영진위 위원, 책임 조사위원 김성훈 <씨네21> 기자) 활동경과를 설명하는 사실상 첫 자리였다. (과거사특위가 주최한 설명회는 발족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주요 내용은 과거사특위 활동경과 및 과거사 진상조사 사건 조사 경과 요약 발표, 진상조사 사건 중 ‘조사종결 사건’(9개) 조사 결과 요약 발표였고, 영화계 참석대상자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종결 사건(9개) 신청인 및 피해자로 한정되었다. 줌을 통한 온라인 회의는 유튜브로 생중계되었으나, 생중계 이후 관련 영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영화진흥위원회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 활동경과 보고서’(이하 활동경과 보고서)는 당일 발표회에 참석을 요청받은 피해자들에게만 공개되었을 뿐이다. 언론에는 관련 기사 한 줄 등장하지 않고, 영화계에서는 발표회가 있었는지조차도 태반이 모르는 암담한 현실에서, 발표회에 참석했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종결사건’ 신청인 및 피해자 일동은 영화인들에게 이 발표회의 문제점을 소상히 알리고 블랙리스트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실천방안을 공론화하는 것이 필요함을 느낀바, 발표회 평가 공유와 더불어 향후 실천방안에 대한 연대 서명을 요청하고자 한다.
I. 과거사특위 평가
피해자들에게 모욕감과 허탈함마저 안긴 영진위 과거사특위 활동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영진위 과거사특위는 영진위 블랙리스트 사건을 축소 왜곡했다.
과거사 특위가 영진위 관련사건 진상조사 및 직권 조사를 해서 3월 9일에 발표한 사건은 <2009~2012년 독립영화전용관 상영검열 및 지원배제 사건>, <2009~2010년 맹OO의 독립영화 사전제작지원 심사위원 배제 등 사건>,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실행사건(2014년 독립영화 제작지원)>,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실행사건(2016년 독립영화 후반작업 기술지원)>, <영화상영등급분류 면제추천제도 개정을 통한 문제영화 상영방해 사건>,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방해 사건>, <시네마달 블랙리스트 실행사건(2013년 하반기와 2014년 상반기 독립영화 제작지원)>, <직권조사_영진위 가족영화 제작지원 사업> 등이다.
위 사건은 이미 문체부 산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가 조사를 벌인 사건들이며, 시민들이 그 진상을 알 수 있도록 백서가 모두 온라인 공개되어 있다. 영진위 과거사특위 활동경과 보고서가 새롭게 밝힌 사실은 거의 없으며, 이미 발간된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를 거의 무단 도용 및 발췌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가 밝힌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실행사건’은 2013년부터 2016년까지의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독립영화 제작지원, 예술영화 제작지원, 영화단체 지원사업, 국내영화제 육성, 예술영화 유통배급사업, 독립영화 후반작업 기술지원 등의 사업에서 블랙리스트를 실행해 수많은 영화와 단체에 지원을 배제한 사건으로 그 실행 범위가 광범위하고 다양한 단체와 작품들이 블랙리스트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그런데 영진위 과거사특위는 이 가운데에서도 극히 일부분인, 2014년도 독립영화제작지원, 2016년도 독립영화 후반작업기술지원, 2015년도 예술영화 제작지원 시 블랙리스트 실행 등만 다루고 있다.
영진위와 국정원이 영화의 내용을 검열하고 심사 과정에 개입하여 지원을 배제하고 적극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실행했던 다양성영화개봉지원 사업은 영진위의 이번 조사에서 통째로 배제되었으며, 블랙리스트 피해를 입었던 <모래가 흐르는 강>, <구럼비-바람이 분다>, <그림자들의 섬>, <불안한 외출>, <밀양 아리랑>,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 <산다>, <소년 달리다>, , <자백>, <불온한 당신> 등의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는 조사 내용에서 전적으로 삭제되었다. 이는 영진위가 실행한 다수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임의로 누락·배제하고 축소 왜곡하려는 시도이다.
영진위가 행한 많은 블랙리스트 사건과 피해 사례와 규모, 범주를 자의적으로 축소한 과거사특위의 조사는 중차대한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조사 내용과 활동경과 보고서를 우리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영화계에 실행된 블랙리스트의 진상을 밝히고 그 과오를 규명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이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범죄를 축소하는 행태를 우리는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2. 영진위 과거사특위의 조사 개시, 조사 과정, 그리고 활동경과 보고서에 피해자는 없었다.
발표회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영진위 과거사특위가 사건 조사 개시에 있어서 피해자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조사를 진행했으며, 조사 내용과 결과에 대해서도 피해 당사자에게 확인 및 승인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활동경과 보고서 발표회에 참석한 피해자들 중 그 누구도, 김성훈 책임 조사위원 등 조사위원들 혹은 주유신 위원장 등 특위위원들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에 더해 확인된 사실은 과거사 특별위원회의 조사에 있어서 조사 설계, 과정, 결과 도출과 발표에 있어서 “피해자”는 없었다는 점이다. 새로 밝혀낸 사실도 없으며, 부실한 진상조사로 인해 후속 조치와 제도개선안은 제대로 논의도 되지 못했다. 영진위는 과거사특위 발족을 유일한 성과로 평가했고, 1기 특위의 과오와 과제를 차기 특위에 떠넘겼다.
또한 활동경과 보고서는 관련 영화진흥위원회 임직원 및 공무원들을 모두 비실명으로 OOO이라고 표기한 반면, 피해자들은 모두 동의 없이 실명 처리하였다. 반면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는 모든 관련자들에게 실명과 비실명처리에 대한 확인 절차를 밟고 발간하였다. 발표회 당일에 활동경과 보고서를 영진위 홈페이지에 공개 예정이라는 통지를 받은 피해자들의 항의를 받고서야, 과거사특위는 활동경과 보고서의 홈페이지 공개 계획을 철회하였다.
3. 표절에 가까운 조악한 활동경과 보고서도 문제다.
활동경과 보고서에는 조사의 취지와 목적도 없고, 과거사특위가 새롭게 밝힌 사실이 무엇인지조차도 없으며, 위에 언급했듯 그 내용 대부분이 문체부 진상조사위의 백서 및 진술조서들을 무단 도용 및 발췌한 것임을 피해자들은 확인했다.
또한 스스로 조사했다고 밝힌 조사대상과 조사자료가 조사위원 개인이 확보한 자료인지, 과거사특위 차원에서 보고서에 공식 인용할 수 있는 자료인지도 불명확하며, 진술자들에게 “과거사특위 차원의 조사이며, 지금부터 말하는 내용은 녹음될 수 있으며, 최종 조사결과보고서에 인용될 수 있다”는 고지를 했는지조차 불명확하다.
4. 상식과 절차를 무시하고 조사신청인 및 단체와의 소통도 없이 철저히 자의적으로 운영된 과거사특위의 난맥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사특위가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및 화이트리스트 관련 제보 및 조사신청’을 접수하는 과정에서 2018년 11월 미디액트의 블랙리스트 사건 조사 신청 접수가 3개월이나 늦어지는 중대 사고가 있었음을, 발표회에 참석한 한 피해자가 증언했다. 뒤늦은 접수 이후에는 과거사특위의 사건 조사 의결 절차 없이, 조사위원이 자신의 직권조사 사건에 임의로 병합하겠다고 ‘보고’하며 일단락 지어버렸다 한다. 비정상적이었던 이 과정들을 과거사특위가 조사 신청 단체에 공지하고 사과하거나, 병합취지를 설명하는 후속조처도 없었음이 발표회 이후 추가 확인되었다. 발표회에서 해당 사건 결과발표는 없었고, 사건 조사 진행 상황에 대한 보고도 없었다.
또한 활동경과 보고서에서 과거사특위 위원들의 의결을 조사위원들이 무력화한 기록들이 발견되었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재심을 요구한 사건이 2019년 1월 열린 과거사특위 회의에서 조사 사건으로 의결되었음에도, 같은 해 4월에 열린 회의에서 조사 의결 건을 재확인하는 작업(조사의 여부)을 거쳤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진상규명이 불가능한 사건으로 판단하여 조사종결 처리함”으로 발표되었다.
위 사건들에 대해 김성훈 책임 조사위원을 비롯한 어떤 조사위원도 조사신청인 및 신청 단체의 신청 취지를 청취하는 자리를 마련한 적이 없다는 점은 조사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과거사특위는 사건 병합처리나 종결처리 역시 일방적인 통보만 했을 뿐이며, 조사 진행 상황을 공유해 달라는 공문요청도 지금껏 받아들인 적이 없다.
5. 진상조사 결과와 별개로 과거사특위는 활동 결과의 정당성을 이미 상실했다.
과거사특위는 진상조사만을 목적으로 설치되지 않았다. 각종 진상조사 및 그에 따른 재발 방지대책 수립, 진상조사 과정에서 규명된 피해자에 대한 구제대책 수립이 그 설치 목적이다. 한데 이번 발표회에서 과거사특위는 그 어떠한 재발 방지대책과 피해자 구체대책도 발표하지 않았다. 발표하지 않은 재발 방지대책 및 피해자 구제대책은 향후 발표할 백서에 담겠다고 하면서 2기 과거사특위에게 그 임무를 미루었다.
피해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재발 방지대책과 피해자 구제대책이 있을 수 있는가? 최소한 피해자들과의 토론회나 간담회, 그리고 영화계와의 소통을 통해 재발 방지대책과 피해자 구제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이 모든 상식을 뒤로 하고,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재발 방지대책 및 피해자 구제대책이 있고, 그 내용을 2021년 6월에 백서를 통해 발표하겠다”는 과거사특위의 활동경과 보고는 무책임함의 극치이다.
II. 실천 요구 사항
우리는 위와 같은 ‘영화진흥위원회 과거사 진상규명 및 쇄신을 위한 특별위원회 활동경과 보고서 발표회’의 평가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요구를 담아 범 영화인들의 연대 서명을 받고자 한다.
영진위 스스로의 반성과 쇄신을 위해 2018년 5월 8일 출범한 과거사특위는 지난 3년 동안 어떤 새로운 사실도 밝혀내지 못하고 부실하고 오류투성이인 활동경과 보고서를 채택 의결하고 활동을 종료하려 한다. 3년 동안 공적 기금으로 운영된 과거사특위의 부실 운영과 파행적인 조사 활동으로 블랙리스트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은 오히려 더 멀어지고 말았다. 블랙리스트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파행과 부실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최소한 영진위라는 공공기관이 블랙리스트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진정성과 공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과거사특위는 마지막까지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는 영진위 과거사특위가 맡은 바 임무를 다하지 않고 차기 특위 구성과 신임 조사위원 선임으로 모든 문제를 이관시키려는 시도에 반대한다.
영진위 과거사특위는 1기 활동을 마무리하며 6월까지 ‘영진위 과거사 진상조사 요약백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현재의 활동경과 보고서가 백서로 확정되는 것을 우리는 용인할 수 없다.
우리는 영진위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과거사특위가 채택한 활동경과 보고서를 전면 무효화하고 폐기하라.
- 과거사특위가 진상조사와 관련하여 이미 의결한 9개 사건과 차기 과거사특위에 이월하겠다는 6개 사건을 언급하는 활동경과 보고서는 그 자체가 블랙리스트라는 사안을 축소 왜곡하려는 시도이다. 또, 이 활동경과 보고서는 영진위 블랙리스트 실행 사건들을 임의로 축소 누락하였으며,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문체부 진상조사위의 백서를 자의적으로 도용하였고, 피해 당사자의 확인 절차 및 조사를 거치지 않았기에 폐기해야 한다.
- 과거사특위가 의결한 조사 결과와 활동경과 보고서 일체를 인정할 수 없으므로, 영진위 9인 위원회에 과거사특위가 요청한 이월과제(조사 및 백서 발간, 책임 조사위원의 차기 특위 잔류 및 위원 연임 등)도 모두 무효화해야 한다.
2. 원칙과 근거도 없이 조사를 진행한 과거사특위 운영의 파행과 난맥상을 철저히 반성하고 공식 사과하라.
3. 문체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에서 확인된 피해자를 포함한 범 영화계와 소통하는 자리를 조속히 마련하라.
4.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안과 관련해, 최소한 문체부 백서에서 확인된 피해자들과의 소통조차 전혀 없이 해당 안 마련을 진행한 과거사특위가 현재까지 제출한 내용을 모두 공개하라.
5. 과거사특위 2기가 아니라 전면 쇄신한 특별 기구를 구성하라.
- 영진위 블랙리스트 문제를 지나간 ‘과거사’로 규정하는 잘못된 인식에 기반한 기존 특위 체제를 타파하고, 새롭게 ‘영화진흥위원회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과 피해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가칭)를 빠른 시일 내에 꾸릴 것을 우리는 영진위에 요구한다.
‘과거사’인 블랙리스트 사건의 피해가 ‘종결’되었다고 선언한 행위 자체가 엄연한 2차 가해임을 영진위는 엄중히 인식하라. 피해자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블랙리스트 문제를 대면하고 있다.
- 이전의 과거사특위가 행한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새 특위를 피해자의 시각, 관점, 입장을 존중하는 원칙 아래 구성·운영하라.
- 기존 과거사특위가 ‘조사’하겠다고 임의로 채택한 15개 사건 범주에서 배제되었던 여러 피해 사례와 사건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
- 과거사특위가 지난 3년간 활동하면서도 제대로 입안하지 못한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 후속 대책과 이를 위한 제도개선안, 피해에 관한 배·보상안 등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시행하라.
- 블랙리스트 실행으로 파행하였거나 사라진 영진위 사업이 온전히 복구·회복되었는지, 피해자들의 현 상황은 어떠한지를 점검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며 사회가 함께 블랙리스트 문제를 기억하는 방안을 수립하여 실행하라.
2021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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