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교육 웹진 <미디어로 여는 세상> 8호(2009년 11월호)
[톡톡인터뷰] 이 땅의 버들이‘들’과 함께, 울타리 넓히기 - 미디어교육 교사 황선희
이 땅의 버들이‘들’과 함께, 울타리 넓히기(1)
- 미디어교육 교사 황선희 선생님 -
황다경, 김수목(TV 미디어로 여는 세상)
네 번째 톡톡인터뷰의 주인공은 <울타리 넓히기>의 감독으로, 장애인 미디어교육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황선희 선생님입니다. 장애인 버들이의 엄마이자, 미디어교육에 참여해 <울타리 넓히기>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감독이자, 또 미디어교육의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황선희 선생님이 생각하는 미디어와 미디어교육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톡톡인터뷰]는 TV 미디어로 여는 세상을 통해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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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꿈네가 미디어교육을 접하기까지
김수목(TV 미디어로 여는 세상)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황선희 선생님 : 제 이름은 황선희구요, 버들꿈네라고도 부르는데 아이 이름이 버들이의 꿈이다보니까 제가 자연스레 버들꿈네가 되었고, 제가 언젠가 부고를 써보자라는 제의를 받아가지고 기사를 한 번 쓴 적이 있어요. 자기 부고기사. 가상으로 한건데, 그때 뭐라고 적었냐면 장애인미디어교육활동가, 울타리넓히기를 만든 독립영화 감독, 이렇게 적어놨어요. 독립영화 감독 몇 세에 별세하다 이게 기사 제목인거예요. 그러니까 그런걸 지향하는 사람이죠. 미디어교육 활동을 하고 싶은거고. 음. 또 하나 소개할거는 저의 아이가 장애인이잖아요. 그래서 다운증후군 장애인 버들이 엄마. 장애 부모로서 제가 현재 살고있는거. 제 소개를 하자면 제가 장애 부모도 된다는거죠.
김수목 : 미디어교육을 처음에 어떻게 접하게 되셨나요?
황선희 : 아이가 고관절탈고라는 병을 얻어가지고 병원에 입원하게 된 적이 있어요. 그때부터 비디오라는 거에는 관심을 가졌어요. 근데 비디오가 미디어라는 생각은 전혀 안했었고. 아이가 병상 생활하는 모습도 찍어주고 아이가 병원에서 퇴원해서 학교 다닐 때는 학교 생활하는 모습을 찍어줘서 나중에 아이가 아팠을 때, 입원하고 퇴원하고 이 생활을 너무 오래 반복했기 때문에 아이가 건강했을 때의 활동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걸로 비디오를 처음 시작했었어요. 그러다가 좀 더 잘하고 싶다란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미디액트가 개관하면서 첫 프로그램으로 퍼블릭액세스 프로그램이 생겼어요. 거기에 제가 지원을 하게 되었는데 가서 보니까 다들 시민단체 간사들인거예요. 주눅들어가지고 평범한 주부가 평범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 했는데 그때 오정훈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나면, 강의내용하고 관계되는건데, 영국 BBC 방송에 비디오일기라는 프로그램이 있어가지고, 카메라를 일반인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주고 자연스럽게 촬영을 해오도록 했대요. 그 시리즈로 비디오 일기를 방영을 했다라는 내용을 듣고 ‘아, 나도 그럼 할 수 있는거구나, 평범한 이야기도 가능하겠구나’ 해서 그때 처음 미디어라는 걸 접한거고, 미디어센터라는데도 가보게 된거고.
미디어교육을 받게된 건, 2003년에 미디액트에서 장애인미디어교육을 받으면서 하게 된거예요. 그때도 이제 제가 자격이 안 되잖아요, 저는 비장애인이니까. 근데 나는 아이의 후견인이고 보호자니까. 그 때 당시 용어는 정신지체인이라고 했는데 정신지체인이 교육받기 어려우니까 일단 엄마인 내가 받아도 되겠느냐 여쭤보고 허락받고 가서 받게 된게 접한 처음이죠. 그때가, 미디어라고 알고 시작한거가.
김수목 : 아이하고 연관해서 미디어교육을 더 받고싶으셨던 거예요?
황선희 : 그때는요, 미디어에 욕심을 낸 것도 아니고 교육에 방점을 둔 것도 아니고, 단지 비디오라는거 비디오촬영을 하는데 조금 더 아이 이야기를 더 잘 담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한거지, 미디어교육에 방점을 둔 건 아니었던 거 같아요.
김수목 : 그럼 미디어교육에 방점을 두고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황선희 : 그때 미디어교육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워크숍 결과물을 내게 되고 마지막 시사회 때 상영을 하게 되는데 장애인분들은 다 중간에 수업을 그만두게 되고 비장애인인 저하고 또 다른 한 분이 작품을 결과물로 내게 됐어요. 그때 <울타리 넓히기>를 만들게 되었고, 그게 워크숍 작품이었는데 우연히 영화제를 돌게 되면서 감독이라는 낯선 칭호로 불려보기도 하고 이러다가 미디어에 대한 관심,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그 다음에 미디어교육이 또 생겼어요, 장애인미디어교육. 그러면서 교사로 제의를 받은거죠. 미디어교육은 제가 특별히 마음에 두지 않았었는데 그때부터 마음에 둔 거 같아요. 아, 미디어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기획에서 제작과정을 제대로 받은 다음에 이 교육을 하게 되면 너도 나도 누구나 자연스럽게 감독도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감독이라는 거보다 나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펴나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교사로 제의받은 것은 굉장히 좀 뜻밖이었어요. 자신감도 실은 없었고,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많이 도와주시고. 그때 같이 교육하신 분이 제가 2003년도에 교육을 받았던 박종필 감독님이었어요. 근데 감독님이 잘 하시니까 저는 따라가는 수준이었죠.
<울타리 넓히기>
김수목 : <울타리 넓히기>가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만들었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황선희 : <울타리 넓히기>가 아이의 이야기예요. 저희 아이 이름이 유리인데 버들이라고 제가 다큐멘터리 안에서는 불렀구요, 그 아이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끌어갔던 건데. 장애인미디어교육에서 뭔가 이야기를 해보자고 하니까 제가 기획안을 그렇게 냈고, 그 때 제가 늘 드는 생각이 아이가 그때 그 시점이 학교를 졸업하고 - 그때 특수학교 고등부를 다니고 있었는데 정규교육 과정에 고등부가 마지막이예요. 그 다음에 이제 새로운 세상, 학교라는 데에서 울타리를 벗어나서 세상으로 첫 발짝을 딛는 때였거든요, 그 만드는 시기가. 그래서 아이가 세상으로 한걸음 나오고 되었는데, (문 여닫는 소리 들림) 지금 아이 오는 소리예요. 허허. 세상을 나가게 되었는데 이 아이와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야 되나하는 생각이 든거고.
아이 이야기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된 이유는 그때 장애인미디어교육에서 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같이 공부했던 친구들이 거의 다 지체장애인들이었어요. 그랬는데 제가 인상에 남는거는 안양에서 오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휠체어를 타고 2시간을 소요를 해가지고 광화문까지 오면서 2시간 교육을 받고 또 가는거예요. 그 오고 가고의 열성 때문에 놀란게 아니고 그들이 그냥 교육만 받으러오는게 아니고 현장에서 자기들의 권리를 위해서 투쟁을 하는거였어요. 그때 장애계 이슈가 이동권 투쟁이었어요. 그때 리프트 사고 추락사건도 일어나고 이랬을 때 지하철 철로 점거를 해가지고 사다리에 쇠사슬 묶어가지고 그런 투쟁들을 하고, 수업 과정 중이었는데 버스를 타자라는 걸로 혜화동 로터리에서 버스 투쟁을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우리 교육하는 친구들이 다 그 투쟁원들인거예요. 그걸 보면서 제가 ‘아 이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위해서 이렇게 투쟁하는데 나는 아이의 보호자라고 자처하면서 나는 정작 우리 버들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던가, 너무 안일하게 살았던거 아닌가’. 뭔가 요구하고 뭘 해달라고 해본적이 없거든요. 그저 그냥 부모가 다 견뎌야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거예요. 여지껏은 난 엉터리 부모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서 그 이야기가 내가 그래서 훌륭한 어머니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여태 이렇게 살은 거에 대한 고백적인 내용이죠. 엉터리 엄마였다는 고백과 앞으로 좀 울타리 넓히면서 아이와 함께 길을 걸어야되겠다라는.
당시 이야기속에 재미있었던 건 아이가 첫사랑이란 걸 하고 있었어요. 근데 그 첫사랑이 우리가 볼 때는 짝사랑이었기 때문에 남자 아이는 참 잘생긴 아이였는데 우리 유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우리 아이만 오매불망 바라보는 그런 내용도 좀 담겨있고. 아이를 제대로 키운다란 말도 잘못되었다란 것도 그 때 알았어요. 아이와 함께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아이와 함께 울타리를 어떻게 넓힐 것인가 그런 걸 만들게 된거죠.
김수목 : <울타리 넓히기>가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였나요?
황선희 : 처음에 <울타리 넓히기>란 걸 시작했을 때는 제가 아이의 울타리를 넓혀야 된다라고 생각을 한 거였어요. 아이를 위해서 내가 아이의 울타리를 넓히는 부모여야 된다라고 출발을 한 것 같은데, 만들다보니 그리고 이제 아이와 함께 인터뷰를 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몇 달이 흘러갔어요.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흘러갔는데 같이 지내면서 만들고나서 제가 느끼게 된거가 이 아이의 울타리 넓히기는 바로 저의 울타리 넓히기였던 거예요. 엄마가 아이를 넓혀준게 아니고 아이가 저를 넓혀주었던거가 되고, 정말로 제가 가정에서 제 구실을 못했어요. 제가 10여년 동안 아팠었기 때문에 아이를 충분히 보살피고 이러지도 않은 엉터리 엄마였는데 그런 가정에만 머물던 제가 세상을 향해서 나오게 된 계기도 되는거였죠.
아이 덕에 제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거예요. 구체적으로는 영상 활동을 하게 되는 것, 활동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도 넓히기가 되구요, 제가 대학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조금 했었는데 정말로 제가 선생이 되어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게 된거, 그래서 그게 넓히게 된거가 되죠. 의미가 큰거예요. 누구는 말했어요. 제 삶이 달라졌다, 전환점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미디어가 제 삶을 정말로 바꿔놓은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성장했고, 아이와 더불어 저도 성장했고 넓혀진 거 같아요. 제 울타리가 넓어졌어요.
미디어교육 교사로서의 첫 발
김수목 : 미디어교육 교사가 될 때의 상황과 그 때 느낌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황선희 : 처음 미디어교육 교사로 제의를 받았을 때 첫 느낌은 굉장한 기쁨이었구요, 그 다음에는 ‘아, 황당하다’고까지 느꼈어요. 과연 어떻게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가능한 일인가 했는데, 저를 설득하신 방법이 “초등학교 4학년은 초등학교 6학년이 더 잘 안다, 심정을 알기 때문에 더 잘 가르칠 수도 있다” 해가지고 “아, 그러면 제가 2003년에 받았으니까 2004년에 가르치는 거에 참여해도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었구요. 더더구나 그 전 선생님이었던 분과 같이 교육을 함께하게 되니까 마음 푹 놓고 하게 된거고. 선생님은 가르치고 저는 주로 평가만 했기 때문에 특별히 교사 역할을 많이 했다고 볼 순 없어요. 교육에 대한 부담은 좀 적게 출발을 했었는데.
이제 교육을 하면서 참여자들이 누구였냐면 지체장애 친구들이었거든요. 2003년에 교육을 받는 입장이었고 2004년에 교육에 참여하게 되면서 내내 드는 생각이 뭐냐면, 아 이게 찾아가는 장애인미디어교육인데 여전히 여기에는 그 당시에는 정신지체 장애인이었고 요즘에는 지적장애인, 지적장애인은 여기에도 설 자리가 없구나 안되는걸까? 저는 우리 버들이를 생각하면서 드는 거였는데, 교육을 하게 되면 회의를 많이 하잖아요. 회의하면서 할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여기에서 우리 아이들도 배우면 참 좋을텐데, 교육이 참 좋은데, 나를 표현하는 거니까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여기에서도 우리[지적장애인]는 소외가 된다는 이야기를 무심코 했던거 같아요. 저는 별로 의도하지 않았었는데 미디액트에서 그걸 귀담아 들으시고 지적 장애인, 발달장애 청소년을 위한 교육도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저는 교육에 참여했지만 교사로서 참여했다는 느낌보다는 메인 교사를 잘 서포트하고 나도 참여자가 되어서 그야말로 다른 친구들이 제작을 하면 나도 제작을 하고,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굉장히 편안한 느낌. 좋았던거는 정말 동료로 대해주셨던거죠. 박종필 감독님께서 저에게는 스승, 선생님이었는데 그냥 똑같이 대해 주시더라구요. 저는 지금도 교육을 할 때 호칭이 적합한지 모르겠지만 보조교사와 함께 교육을 할 때, 그 생각을 늘 해요. 제가 처음에 했던. 저는 그때 보조교사로 참여한 건 아니었어요. 같이 교사로서 둘 중에 하나로 참여했는데 아무튼 제 역할은 보조적이었던 거잖아요. 근데 그런 거를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그냥 하셨던, 정말 동료로 대해주셨기 때문에 존중하는거 정말 잘 배웠거든요.
김수목 :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을 처음 하시게 되었을 때의 소감, 느낌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황선희 : 첫 해 2005년에 서울여고에서 시작을 했었는데 특수학급이 있었고 거기에 이제 특수학급에 굉장히 열정적인 교사가 계셨어요. 이미 당신 스스로 미디어교육을 하고 있었더라구요. 그래서 1학기 때 한 번 했었고, 2학기에 가게 되었는데 저 혼자 특수학급의 교사로 참여한게 아니구요. 기획자 홍교훈 선생님 들어가고, 그 당시 류미례 감독님도 교육하고, 저도 들어가고 그 다음에 또 보조교사도 한 분 들어가셨어요. 그래서 교사는 미디액트에서 3명이 들어갔고, 학교 현장에서 현장 교사도 같이 합류를 했었고.
그 다음에 아이들을 1, 2, 3학년 전부 한 반에 모았어요. 32명이 4명의 교사와 같이 했기 때문에 완전 팀티칭이었어요. 메인은 저하고 류미례 감독하고 돌아가면서 하고, 팀을 4팀으로 나눠가지고 맡아서 했었기 때문에 조금 실험적인 교육이었던 거 같아요.
김수목 : 나를 표현하는게 미디어교육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런게 처음에 잘 되었던 거 같으세요?
황선희 : 잘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거가 수업에 샘플영상이란 걸 활용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는 지적장애인 샘플영상은 없죠. 미리 만들어가기도 하고 했는데, 뭔가 이제 오늘 사진으로 영상을 만들거다 하면 그 이야기를 먼저 만들어가서 보여주고 그걸 미디어맵 통해가지고 분석도 하고 아이들의 의견도 묻고 하는데 아이들의 생각을 우리가 알 수만 있다면 생각 끌어내기가 더 쉬웠을텐데, 생각 끌어내기가 어렵긴 했지만 자주 만나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아이들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가 있어서 아이들의 생각만 엿볼 수 있다면 만드는게 어렵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
김수목 :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을 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황선희 :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거는 제가 <울타리 넓히기> 딱 한 작품 만들어가지고 지금은 뭐 듣지도 않지만 몇 년 동안 한 편의 작품가지고 감독 소리를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영화제에서 감독과의 대화할 때마다 무대에서 질문도 받고 대답을 하고 이럴 때 제가 감독이 되어서 인사도 하고 했잖아요. 변변치 않은 나의 일상 이야기를 가지고 했는데, 그래서 제가 서울여고 친구들한테 그때는 2006년 때 제가 한 학년을, 첫 교육은 세 학년을 모두 모아서 팀티칭을 했었고, (2006년에는) 교사 1명당 한 학급 요렇게 맡아서 할 때였는데, 교육을 하고 1년이 지나서 상영회를 할 때, 아이들이 그때 11명이었어요. 11명 친구들을 모두 무대에 나오게 해가지고 - 무대는 특별히 없죠, 교실 안에서 상영회 했으니까. 교실 교탁 치우고 교탁 앞으로 나오게 해가지고 칠판 앞으로 나오게 해서 “너희들은 내가 하나 만들어서 감독이 되었듯이 너희들도 오늘 한 편 만들었으니, 너희들의 작품을 남겼으니 너희들도 감독이다. 그래가지고 감독이 된 마음으로 무대인사도 하고 자기 영상도 하고 함께보자” 했었거든요. 그랬는데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정말 감독이 된 느낌으로 인사를 하고, 실은 객석에 있는 사람이 더 적어요. 우리들하고 교사 몇 분하고 미디액트에서 몇 분 오고 요런 정도였으니까. 박수를 받았을 때 그 아이들의 표정. 너희들도 감독이다, 제가 들었으면 너희들도 들을 수 있다는 그 말을 해주고 아이들이 그걸 받아들이고 기뻐했던게 많이 남아요.
김수목 :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은 그 자체만으로 다른 교육하고 다른 특징이 있을 거 같은데, 참여하는 아이들의 느낌, 반응, 변화 이런거에서도. 이 교육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황선희 : 달라지는 과정요? 변화되는거?
김수목 : 그런 것도 괜찮고, 선생님이 교사로서 느끼는 이 교육의 특징이 있다면 뭘까요?
황선희 : 특수학급이라고 해도 학교교육이기 때문에 굉장히 부드럽지 않은 수업일 수가 있어요. 규율이란 것도 있고 그랬는데. 그리고 다른 거는 결과를 많이 보기도 하잖아요. 시험이란게 있어서 결과를 체크하기도 하고 이러는데. 우리는 미디어수업에서 과정을 중시했었던 거 같아요. 특히 우리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 수업에서 좀 즐길 수 있었으면 하고 저희 교사들이 바랐었구요. 그 다음에 뭔가 성과를 얻기 위해서 교육을 하지는 말자, 그 한 시간 한 시간 충실하게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자 했었는데 미디어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을 했다가 나중에는 아이들이 “선생님, 미디어 정말 좋아요” 했을 때 그런거. 그 다음에 아이들이 근데 이제 우리가 생각하는 선입견이 좀 있잖아요. 기계 다루는게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훨씬 쉽게 접근했었던 것 같아요. 카메라 만지는 것도 그렇고 비디오카메라 만지는 것도 그렇고. 다음에 자기를 많이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본래 미디어교육에서 우리가 목적으로 두는 거가, 특히 우리 발달장애 친구들한테 뭘 원하냐면, 자기 표현. 제가 우리 아이를 생각해도 그렇고 엄마가 결정해주는 부분이 참 많아요. 내가 오늘 복지관을 가는데 어떤 옷을 입고갈까? 저야 물론 지금 아이가 입고 싶은대로 그대로 두긴 하지만, 옛날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엄마가 정해주는게 빠르잖아요. 오늘은 핑크 입었으니까 아래에는 청바지, 핑크 윗도리에 청바지 양말은 뭐 이렇게 하는데 어느 때는 정말 이상한 옷을... 저는 어떻게 했냐면 겨울에 여름옷만 꺼내지 않으면 그냥 입고 가게 했었거든요. 근데 대개 부모들이 저도 과거에 그랬었고, 아이를 굉장히 사랑하고 존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결정은 엄마가 하는게 많아요. 그래서 미디어교육 통해서 정말 내가 좋아하는게 뭐고, 내가 싫어하는게 뭐고, 내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내가 누구와 말하기를 원하는지 나를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거를 원했었어요. 그리고 스스로를 결정하고. 그래서 정말 자신감을 갖도록. 보호하는 사람 없는 상태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요런 걸 목적으로 했는데 정말 아이들이 교육이 끝날 즈음에는 눈에 확 띄게 달라지는 변화는 없지만, 정말 얼굴에 더 웃음을 지을 수도 있고, 그 다음에 정말 자기 안에 있는걸 표현할 수도 있고 이런걸 볼 때요.
그리고 결과를 중요시하지 않다고 했는데 과정을 하다보면 결과물이 반드시 나오잖아요. 그리고 다른 교육에 비해서 오히려 100% 결과물이 나와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 결과물을 보고 정말 뿌듯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에도 참여했고 또 결과로서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에 자신감이 드는 거 같더라구요.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존감도 생기고. 근데 한 해 했다고 되는게 아니기 때문에. 근데 다행히도 우리가 서울여고를 떠난 다음에도 선생님 스스로 미디어수업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교육이 계속 이어져서. 제가 좋았던 거는 올 초에 전화를 받았어요. 첫 해에 교육을 했었던 친구인데 ‘선생님, 만나고 싶어요’해서 만났는데, 그 때 했던 친구 몇 명이랑 저도 모르는 자기만의 언니들을 데리고 나왔어요. 평화공원가서 인터뷰 하고 놀았거든요. 그러니까 인터뷰 하고 놀 정도가 된거예요, 아이들하고 저하고 놀 때. 선생님하고 학생으로 만났는데. 그리고 그 아이가 ‘함께사는 세상’ 거기에도 한 달에 한 번인가 일주일에 한 번인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하더라구요, 거기 왔던 친구 두 명이. 그래서 그걸로도 이어지고. 미디어라는 걸 계속 놓지 않게 된 계기가 된 거 같아요. 그래서 늘 자기 안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표현하고 이러는거를 할 수 있었던거가 그 교육을 통해서가 아닌가 해서 그게 참 뿌듯하더라구요.
김수목 : 지적장애인 미디어교육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황선희 : 우리 아이가 특수학교 다녔을 때 반장을 한 번도 못해봤어요. 반장을 하면 차렷, 경례를 하더라고. 모르겠어요 했는데 제가 모르는지도 모르는데. 복지관에 몇 년을 다니면서도 아이가 반장을 했다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역시 차렷, 경례를 못해봤다는 거죠. 교육을 하고 나면 그래서 제가 집에서도 반장을 시켜주려고 차렷, 경례 해보자하면 쑥스러워서 잘 못하는거예요. 그랬는데 미디어교육 하면서 전부 돌아가면서 차렷, 경례 해보게 하거든요.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게 누구나 똑같이 참여할 수 있게하자 뭐든지. 그만큼 자기가 차렷, 경례도 못할 만큼 자존감, 자신감이 없는거예요, 우리 아이를 보더라도.
미디어교육을 통해서 제가 원했던 건 자존감도 찾고 자신감도 찾아가지고 자기 결정도 할 수 있고 좀 당당해지는 거였거든요. 다른 미디어교육도 그거는 맞지 않나요? 그런 식으로 가지 않나요? 그래서 그걸 중점적으로 했고, 정말 표현력 같은거, 자기 결정력이란 거가 사진을 찍잖아요. 그러면 흔들리는 사진도 찍고 반쪽 나온 사진도 찍고, 굉장히 여러 가지 사진이 나오는데 오케이 컷을 고를 때 정말 아이 의견을 존중하려고 애를 썼어요. 교사 입장에서 마음에 안드는 사진인데도 우리 교육 목적이 그러하니 아이를 존중하자, 정말 그렇게 하니까 그런 거부터 해서 존중하려고 했고. 자기 표현 향상하고 자기 결정권 요런거.
그다음에 이제 교육을 쭉 하다보니 교육에만 머물지 말고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에도 목적을 두었던 거 같아요. 교육이 흐르면서 발달장애 친구들 교육을,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특히 올해는 일상미디어활용도 많이 생각을 했었고. 또 과정에서는 우리가 디카나 비디오카메라만 하지 말고 모든 청소년이 관심을 가지는 핸드폰도 하고 인터넷에 관한 것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미디어들도 좀 다루어 본 적이 있어요. 근데 여러 가지 한다고 해서 다 그렇게 해야만 경험될 수 있는건 아니고 카메라나 비디오만 가지고도 나를 표현하거나 이런 거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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