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 액세스 최초의 실험들은 어떻게 기획되고 실천되었는가.

(2004 제3회 퍼블릭액세스 전략토론회 발제문)

 

박채은 (미디액트 정책연구원)

전 세계적으로 퍼블릭 액세스는 3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은 캐나다의 영화위원회(NFB)의 ‘변화를 위한 도전’이라는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뿐만이 아니라 현재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전역으로 확산되어, 갈수록 상업화되어 가고 있는 미디어 환경을 바꿔내고 시민들의 다양한 참여들을 독려해 나가면서 미디어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각 나라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30여 년이라는 기간 동안 퍼블릭 액세스를 둘러싼 다양한 실험들이 전개되었는데, 그 전개 양상 및 모델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다. 중요한 것은 각 나라마다 주어진 조건들 속에서 다양한 논쟁들과 실험을 통해 각 나라에 가장 알맞는 액세스 모델을 정착시켜왔다는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모델에 안착하기 보다 변화하는 정치?경제적 조건들에 대응해 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접근과 참여를 보장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들을 펼쳐 왔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연구를 통해 알려졌던 해외의 퍼블릭 액세스 사례들은 이미 오래 전에 제도화되어 안정적으로 발전되어 온 나라들에 국한된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퍼블릭 액세스가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은 우리에게는 이러한 사례들이 우리의 조건과는 다른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이 글은 각 나라의 현재 액세스 활동이나 제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퍼블릭액세스가 제도화 되기 이전인 1970년대 캐나다와 미국의 초기 과정들을 복원함으로써 액세스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실천되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실천들이 어떤 지원을 통해 가능하였는지를 살펴본다. 비록 30여 년이라는 시간적 거리는 존재하지만,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조건(오히려 지금보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캐나다와 미국의 초기 액세스 운동 활동가들의 집중력있고 열정적인 활동은 이제 막 지역에서 케이블을 통한 액세스를 시도하려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훈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우리의 현실에 맞는 새로운 실천으로, 제도적 보완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의 마지막에 지역 케이블 액세스 활성화를 위한 시범사업을 제안한다.

 

1. 캐나다 ‘변화를 위한 도전’
: 공적 지원 구조 + 지역시민사회단체

 

‘변화를 위한 도전’은 캐나다 영화위원회의 10년에 걸친 프로젝트였다. 우리에게도 이 프로젝트가 퍼블릭 액세스의 초기 모델임이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 프로젝트가 어떻게 캐나다의 퍼블릭 액세스 TV 제도화로 이어졌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빈곤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출발하였다가 사회와 주류 미디어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지역 케이블 방송국을 통해 방송할 수 있는 제도로 정착되었다.

1) 10여 년의 공적 지원 체계 : 기술지원 + 인력 지원 + 자금 지원

1966년에 처음 시작된 ‘변화를 위한 도전’ 프로젝트는 많은 성과와 중요한 과제들을 남기고 1975년에 막을 내렸다. 10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캐나다 영화위원회(NFB)는 ‘빈곤에 대한 전쟁(War on Poverty)'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정부 각 부처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며, 민중이 참여하는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통해 빈곤의 원인을 근절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초기 주창자들은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시민-정부간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영화를 사용하려는 착상을 하게 되었고, 제작과정에 일반 시민의 직접적 참여를 시도하였다.
NFB의 이 프로젝트는 그 목적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캐나다 전역의 빈곤지역 공동체의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조직화하고, 정부 당국과의 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공공적 지원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그 공적 지원은 기술지원 및 인력 지원,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자금을 직접 지원하였다.

당시에 다큐멘터리와 같은 영상물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었다. 특히 대부분의 영화제작이 필름으로 이루어졌던 당시의 제작시스템은 막대한 제작경비를 필요로 하였다. 필름을 이용한 작업은 전문적으로 훈련된 감독, 카메라 오퍼레이터, 음향 담당자를 필요로 했으며, 지역 공동체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초기 프로젝트에서는 필름 장비 지원과 그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영화제작자들을 빈곤지역에 보내었고, 영화제작자들은 주민들과 함께 지역공동체의 문제들을 기록해 나갔다. 이후 1968년 소니에서 개발한 포터블 비디오와 녹음 장비인 포터팩(portapak)은 이러한 필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포터팩은 휴대가 가능하고, 가격도 저렴하였으며, 간단한 작동법 등의 장점 때문에 이 새로운 기술은 비전문가들의 제작참여를 가능하게 하였다. 포터팩의 등장으로 드디어 제작 수단에 대한 진입장벽이 현저하게 낮아지게 된 것이다. 당시 포터팩의 등장은 최근 디지틀 6mm캠코더의 등장과도 비견될 만한 놀라운 기술적 발전이었다. 기술의 도움으로 주민들의 참여가 더욱 용이하게 되자 NFB는 더 많은 지역에 ‘변화을 위한 도전’ 프로젝트를 실험하게 된다.


2) 소외계층에 대한 미디어교육 지원

‘변화를 위한 도전’ 프로젝트에서 눈에 띄는 작업은 바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교육과 다큐멘터리 제작, 그리고 빈곤지역 공동체의 강화였다. 퍼블릭 액세스가 단지 채널을 개방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주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68년 두 여성 감독인 도로시 토드 에노(Dorothy Todd Henaut)와 보니 클라인(Bonnie Klein)은 포터블 비디오의 잠재된 가능성을 직시하고 <공동체 비디오테잎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1968년에 두 여성은 몬트리올의 슬럼가의 투쟁단체인 성 자크(St. Jacques) 시민 위원회의 구성원들에게 포터팩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교육을 받은 이들은 슬럼가의 빈민들을 인터뷰하고 주민들을 조직하는데 참여하였다. 완성된 비디오 테잎은 공개적으로 상영되었다.

1970년에 ‘변화를 위한 도전’의 지원을 받았던 몬트리올 패럴렐 인스터튜트(Parallel Institute)는 민중조직들을 결집시키는 수단으로 비디오 장비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 단체는 빈민들에게 기술,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였는데, 예를 들면 네이버후드 비디오 웨건(Neighborhood Video Wagon)이 빈민들을 조직화시키기 위해서 동원되었고, 거리에서 사람들을 인터뷰하거나 비디오 테잎을 상영하는데 사용되었다. 빈민들은 한번도 자신들의 얘기를 공공 영역에서 표명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지만, 이제 그들은 비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적으로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

‘변화를 위한 도전’ 프로젝트는 도시 지역뿐만이 아니라 고립되고 소외되어 온 캐나다의 시골 지역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과 조직화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 중 한 프로젝트가 1969-70년에 앨버타 드럼헬러 밸리(Drumheller Valley)의 로즈데일 마을에서 이루어진다. 이 지역은 몰락한 광산지역이었으며, 상하수도와 가스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이러한 지역의 문제를 환기시키고 관계당국과의 대화를 모색하고자 ‘로즈데일 시민 행동 위원회’ 회원들은 비디오에 대한 교육을 받은 후, 지역 문제에 대한 비디오를 제작하였다. 비디오를 제작하는 과정 속에서 마을 주민들은 지역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화시켰고, 이후에 정부와 기업과의 협상을 이끌어 내는데 성공하게 된다.


3) 캐나다 선더만의 공동체 TV 프로젝트 : 제도화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

1970년 캐나다 선더만(Thunder Bay)에서 최초로 퍼블릭 액세스 실험이 이루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변화를 위한 도전’프로젝트 일환이었다. 지역 케이블 채널에 공동체 프로그램을 방송하려는 이 지역 시민조직의 노력과 ‘변화를 위한 도전’의 기술적 지원을 통해서 지역 케이블 채널에서 4시간이 프로젝트에 할당되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정의한 공동체 TV(퍼블릭 액세스)의 기본정신은 다음과 같다. “무료접근과 시민에 의한 운영이라는 두가지 구성요소는 채널의 운영과 진정한 공동체 TV를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참여와 결정권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실은 이 공동체와 지역에서 파괴적인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채널은 그러한 목적 안에서 운영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창조된 것은 현재 시스템의 중복일 뿐이다”

그러나 선더만(Thunder Bay)의 공동체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지역정부는 그 프로젝트가 급진주의적인 비디오집단에 의해 운영되는 것을 비난했다. 지역 케이블 사업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에 불만이 많았고, 시민단체에게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러나 그 짧은 역사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는 처음으로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만든 공동체비디오를 케이블 공간을 이용하여 ‘퍼블릭 액세스’라는 새로운 형태로 전용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후 선더만의 실험은 케이블 TV에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을 방송하려는 다른 실험들의 훌륭한 모델이 되었다. 공동체 TV라는 황무지를 개척한 선더만의 공동체 프로젝트 등 ‘변화를 위한 도전’의 일련의 실험들은 케이블 TV에서 퍼블릭 액세스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할 수 있는 경험의 원천이 되었다. 마침내 1971년 7월 16일 캐나다 라디오 텔레비전 위원회(CRTC)는 케이블 사업자들에게 퍼블릭 액세스 채널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공동체 TV는 이러한 프로젝트의 성과들을 계승하면서 제도화되었다.

 

2. 미국 뉴욕에서의 퍼블릭 액세스 실험
: 민간재단지원 + 시민사회단체

 

미국의 사회제도 시스템은 공적기구의 공적 지원에 의해 이루어지기 보다 민간재단들의 기금에 의해 더 많이 유지되고 있다. 특히 방송구조는 공영방송모델을 지향하는 우리나 유럽과는 달리 방송도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상업방송들을 육성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캐나다의 ‘변화를 위한 도전’프로젝트와 같은 장기간 대규모의 공적 프로젝트를 진행시킬 수 없었고, 미국의 퍼블릭 액세스 운동은 민간재단 및 케이블 산업에 지원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존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미디어활동가들은 케이블 방송 시스템에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공간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그 결과 채널 획득은 물론 채널 운영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1) 뉴욕, 퍼블릭 액세스 방송 실험 : 케이블 방송 독점 방영권에 대한 반대

1970년에 맨하튼 지역에서는, 5년 전부터 임시 케이블 방송을 해왔던 두 개의 케이블 회사가 뉴욕시 정부와 20년 독점방영권 협약을 맺으려고 하자 수많은 미디어전문가와 지역운동단체들이 장기 독점권 협약에 반대하고 나섰다. 케이블 TV의 중요성과 잠재력을 알고 있었던 그들은 프랜차이즈계약이 밀실협약으로 체결되어서는 안되며, 그 과정을 공개하고 시민들의 공적인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들은 그 협약이 케이블 방송 시스템에 있어서 약자들의 액세스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진정한 퍼블릭 액세스를 위한 비상업적 무료채널을 보장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렇게 반대가 거세지자, 뉴욕시와 케이블 회사는 퍼블릭 액세스 채널을 무료로 제공할 것을 약속하였다. 이 외에도 케이블 회사는 지역 공동체 제작자들에게 카메라와 스튜디오 및 장비를 제공하고 기술인력들을 제공하기로 합의했으며 교회, 탁아소,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에 무료로 케이블을 연결하기로 하였다. 이 후 뉴욕시는 두개의 퍼블릭 채널 이외에 두 개의 정부채널도 추가로 확보하게 된다.
뉴욕의 실험은 우선 두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우선, 비디오 단체, 시민단체, 미디어 활동가들은 케이블 TV의 잠재력을 인식하고서, 케이블 TV 독점권 협약(즉 우리의 경우 ‘케이블방송사 (재)허가권1)’)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케이블 방송사업 허가자체가 특정 지역 내에서 독점적 사업권을 부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특정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셈이다. 방송의 공공적 성격을 확보하고 지역케이블 방송 사업의 초과이윤의 환수를 위해서도 프랜차이즈계약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것과 그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 뉴욕지역의 운동단체들과 미디어전문가들의 활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사 허가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도 보장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케이블사업자의 초과이익 환수 문제도 논의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그런데 뉴욕의 활동가들은 단순히 프랜차이즈 계약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적극적인 시민들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무료채널을 요구했으며, 시민들의 제작에 필요한 기자재와 장비제공을 요구했으며, 제작을 도와줄 인력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였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이러한 요구들을 시정부와 케이블 사업자가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있다. 이것이 두 번째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케이블 산업이 퍼블릭 액세스 운동을 지원하였던 것은 미국 상업 텔레비전 방송의 장래를 두고서 벌어지는 기존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방송과의 격렬한 갈등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다채널의 케이블 TV가 기존 방송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기존 방송사들은 케이블 TV가 지나친 상업주의로 방송의 공공성을 저해할 것이라며 케이블 TV를 경계하였다. 기존 방송사들이 케이블 TV를 비난했던 대의는 ‘공공성’이었지만, 케이블 TV의 성장으로 시청자를 뺏기고, 광고 수입도 크게 줄어들 거라는 두려움이 케이블 TV를 견제했던 가장 큰 요인이었다. 방송시장의 주도권을 누가 잡을 것이냐는 문제로 두 진영은 더욱 팽팽히 맞섰다. 기존 방송의 반대가 거세지자, 케이블 방송 사업자들은 케이블 TV의 공공적인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퍼블릭 액세스 채널을 보장함으로써 케이블 TV가 사회적으로 공적책임을 다하는 매체임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였다.2)
뉴욕의 시민사회단체 및 활동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케이블 TV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사실 케이블 TV에 공공성을 부과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케이블 TV가 지역의 허가받은 독점사업이라는 점 때문이며, 또한 케이블 설치를 위해서 공공 공간들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프로그램 개발, 조직화 및 아웃리치 활동, 제작지원단체

1971년 7월에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이 8만의 맨하튼 케이블 텔레비전 가입자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하면서 가시청자층이 확대되면서 문제의 초점은 이제 채널의 확보가 아니라 프로그램의 개발로 옮겨졌으며, 뉴욕의 시민들을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조직화 및 아웃리치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테아도라 스클로버(Theadora Sklover)였다. 그녀는 마클재단과 스턴재단의 지원을 받아 <열린채널 Open Channel>이라는 이름의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열린채널>은 액세스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액세스 채널에 접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제작시설과 기술인력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스클로버는 퍼블릭 액세스 채널이 모든 계층에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열린채널>은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보이스카우트에서 흑인 운동가, 미술단체에서부터 교회 성가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룹들에게 방영시간을 배분하였다. 스클로버는 제작활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웃리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웃리치 활동은 액세스를 활용해야 할 지역사회의 대상들을 ‘찾아가서’ 참여를 독려하는 조직과 교육활동을 말한다. 즉 지역 케이블 커뮤니티를 조직화하고 비디오 장비를 다룰 수 있도록 시민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뉴욕지역에 거주하는 TV와 영화제작자, 감독, 작가, 카메라, 음향, 조명 기술자 등 200명의 전문가 집단 풀을 조직하여 이들이 <열린채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제공하도록 하였다.
뉴욕에는 <열린채널> 외에도 4개의 액세스 지원단체들이 있었다. 캐나다의 ‘변화를 위한 도전’프로젝트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조지 스토니가 설립한 대안미디어센터(Alternate Media Center, AMC)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센터는 퍼블릭 액세스를 알리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지방정부와의 투쟁에서 어떻게 비디오가 이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 다른 지원단체로는 뉴욕주의회의 기금을 받았던 글로벌 빌리지, 레인댄스 코퍼레이션, 민중비디오극단이 있었다. 이들 단체는 액세스 채널을 통해 자신들의 제작물을 방영하였으며, 액세스 채널의 활성화를 위한 실천적인 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들 단체들의 지원과 액세스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두 개의 액세스 채널을 통하여 일주일에 200여 시간의 테잎이 방송되게 되었다.

 

3. 현재
: 캐나다 퍼블릭 액세스 구조의 문제, 미국 액세스 운영의 변화

 

앞서 살펴 본 것처럼 캐나다와 미국의 퍼블릭 액세스의 출발은 매우 달랐다. 캐나다의 사례는 ‘공적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10년이라는 장기간의 적극적인 국가의 지원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캐나다는 조직적인 운동의 형태를 취하기 위한 시도를 해왔고, 이는 결과적으로 방송국의 운영을 보다 전문적인 집단이 그 운영권을 행사하는 모델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서 아일랜드 미디어 연구자인 션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공동체의 참여는 퍼블릭 액세스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이는 컨텐츠의 생산과 송에 관한 의사결정, 방송국의 일상적인 운영과 계획, 소유권, 전략적인 운영 활동 등에의 개입을 말한다. 특히 방송컨텐츠의 참여, 즉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수월하지 않는 부분이다. 캐나다의 경우, 캐나다의 액세스 텔레비전의 초창기에는 프로그램의 70% 정도가 전적으로 공동체 자신에 의하여 제작되었다가 10여 년이 지난 후, 방송국이 프로그램 제작에 있어서 더욱 많은 역할을 함에 따라서 40% 정도로 줄어든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된 것은, 공동체가 방송국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였던 초창기에는, 흔히 많은 비용과 수고가 필요한 경우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전적으로 자발적인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여러 면에서 고무적인 것이었다. 공동체 텔레비전의 가치가 인정됨에 따라서 케이블 사업자는 더 많은 지원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방송국의 전문적인 기술자에게로 옮겨졌다. 캐나다에서는 방송국이 독립적인 운영체가 아니라 케이블 회사에 의하여 운영되는 것이었으므로 공동체의 발전에 중심을 둔 운영철학은 상대적으로 약하였고 전통적인 미디어 운영 모델의 성격이 더 강하였던 것이 그 이유이다. 그러므로 좀더 많은 방송국의 지원이 공동체의 더 빈번하고 많은 참여를 항상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많은 경우에서 저조한 참여로 귀결되었으며 기존의 관행적인 텔레비전 방송국의 형태로 옮아갔다. 1990년까지 캐나다에서 볼 수 있었던 경우, 공동체 참여는 ‘자문위원회’나 비슷한 정도의 것으로 제한되었다. 프로그램과 그 내용-말하자면, 비방과 명예훼손 등의 경우-에 대하여 케이블 회사가 법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이 케이블 회사로 하여금 무엇이 방영될 지에 관한 최종적인 책임과 방송국 운영으로 생기는 거대한 최종수익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은 캐나다나 유럽에 비해 공공 커뮤니케이션 기반이 취약한 편이다.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간섭, 그리고 지방정부에 대한 연방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미국의 전반적인 정책 풍토는 결과적으로 공공적 정책의 입지를 협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적 지원 구조가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민간재단의 지원과 케이블 방송사업자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비영리 기구들이 액세스 방송국을 운영해 가면서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미국에서는 앞서 캐나다 모델과는 달리 액세스 채널은 프로그램 제작을 지원할 자원을 갖춘 자치적 비영리 기관으로 시작되었다. 그 방송국들은 자치적이었고 많은 수가 공동체의 발전과 활동가들을 배경으로 하여 생겨난 것이었으므로 공동체의 참여가 처음부터 훨씬 강조되었다. 공동체와 개인들은 스튜디오의 안과 밖에서 한층 활동적으로 제작에 참여하였다. 당시 많이 채택되었던 형태가 지역 공동체나 법정기관과의 ‘파트너쉽’이었다. 많은 경우에, 학교, 교육재단, 사회개발 기관 등이 공동체 방송국과의 협약에 들어가서 자원을 투자하고 제작과정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션이 그의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캐나다와 미국의 사례를 통해 주목해야 할 점은 케이블 회사에 의한 소유에서 오는 상이한 결과이다. 케이블 텔레비전에 의한 소유는 기존의 관행적인 상업방송으로 변질되게 하는 경향을 가진다.
또한 주목할 점은 미국을 비롯한 개방형 모델을 취하고 있는 나라들에서의 액세스 모델의 변화이다. 미국의 개방형 모델은 선착순 원리에 입각한 액세스 모델이었다. 선착순 원리로 대표되는 제퍼슨 식의 자유주의적 원칙은 형식적인 표현의 권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하였으며, 단순히 채널들을 열고 장비를 제공하는 것으로는 사회변화를 만들어내는데 거의 무력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미국 내에서 그러한 자유주의적 접근에 대한 자기반성은 방송국이 지지하는 특정 단체에게 고정 시간대를 부여하거나, 주제별 편성 원칙을 선착순 원칙과 결합시키고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하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① 개방형 모델(선착순 원리) ② 고정 편성(소외받는 계층, 단체) : 노동, 여성 소수민족, 장애인 등 ③ 자체 제작프로그램

이러한 개방형 모델의 변화는 퍼블릭 액세스가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고, 사회 변화를 견인하는 촉매제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는 한편, 고정편성과 중요한 사안에 대한 질 높은 자체 프로그램은 퍼블릭 액세스 채널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독일의 개방채널도 기존의 100% 개방형 모델에서 점차 다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방송하고 있다.
베를린 개방 채널(OKB)의 디렉터 위르겐 링크는 독일 개방채널의 변화를 다음 세가지로 꼽고 있다.

지난 수 년 간 OKB는 프로그래밍에 있어서 다음 세 가지 영역을 개발, 발전시켜 왔다.

1. 선착순 원칙의 진정한 퍼블릭 액서스 분야. 개인들이 액서스 면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동안 그룹들은 매주 같은 시간에 정기적으로 프로그램을 내보낼 수 있다.
그 중 하나로 베를린 소재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독립적 성격의 학생 단체인 '스튜던트 TV(Student TV)'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주로 세계화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비판하는 단체인 '실업이 만든 영웅(Heroes of Unemployment)' 역시 그 중 하나이다.

2. OKB는 미디어 사용 능력을 가르친다. 미디어가 현대 사회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더 강력해 지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 수위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OKB는 일반인들이 스스로 비판적 사고를 통해 미디어를 대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여건 및 조건을 제공한다.
OKB는 학교를 위한 시립 미디어 센터인 'kom(kids on media의 약어)'과 협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매일 같은 시간 대에 한 시간 동안 방영된다.
kom프로젝트를 위해 OKB는 각 미디어 제작 단위에 디지털 캠코더 2대, 비선형 편집기, 조명 및 음향 장비 등을 제공한다.

3. '현장 속의 OKB(이벤트 TV)'라는 것이 있는데 특정 단체들이 OKB를 통해 자신들이 주최하는 행사의 현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방영하는 것을 말하며 이와 관련된 법적 책임은 모두 해당 단체가 진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OKB 관계자의 개입 없이 특정 행사를 100% 비편집 상태에서 내보내는 것이다. 독일 내 모든 정당들(사회당, 사회 민주당, 자유당, 녹색당, 보수당)이 이런 기회를 매우 자주 사용하고 있다. 또한 OKB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취재, 방영한다. 현장 제작을 위해 OKB는 카메라 3대를 갖춘 이동 스튜디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주로 학생들이 이 스튜디오 운영을 담당한다.

이 외에도 각 나라에서는 아웃리치 활동과 지역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OKB 또한 이민자나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 여성, 실업자와 같이 주류 미디어에서 배제된 계층을 대상으로 특별 교육 및 워크샵을 마련하고 구체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으며, 미국 MNN과 DCTV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의 액세스 센터들이 지역사회운동단체 혹은 개인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형태가 될 수도 있고, 장비나 기술인력 등의 직접 지원이기도 하고, 때로는 단체에게 기금을 지원하는 수도 있다. Deep Dish TV나 Paper Tiger TV와 같이 공동체 방송과 비디오 단체들과 다른 것들의 내용을 한 데 모으고 공동체 방송국들에 널리 배포하는 것에 특히 노력해 온 단체도 있다.
이러한 지원이나 아웃리치를 위한 기금은 퍼블릭 액세스 방송국 자체 예산을 통해 확보하기도 하고, 지역 민간재단의 기금을 지원받거나 공공기금에서 지원되기도 한다.

 

4. 한국 케이블 퍼블릭 액세스 활성화를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
[Pilot-Cable Access-Project]

 

우리 나라의 경우 2000년 통합방송법이 통과되면서 지상파, 위성, 케이블에 시청자들의 참여가 가능한 공간이 마련되기는 하였으나, 퍼블릭 액세스의 도입 자체가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대중운동과 방송모델에 대한 실험 없이 법적으로 제도화되었다. 캐나다, 미국, 독일 등의 나라에서 퍼블릭 액세스의 발전경로는 그 나라마다의 상이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것은 지역케이블 액세스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재단 지원 및 케이블 산업의 이익 환수를 통한 자금지원을 아우르는 공적인 지원 체계 속에서 각 지역의 활동가와 단체들이 각 지역의 주민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아웃리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초기의 퍼블릭 액세스를 알려나가고 시민들의 매체로써 정착시켜 나갈 수 있었다.
공적 지원과 아래로부터의 실험은 지역케이블을 통한 퍼블릭 액세스를 정착시키는 중요한 출발지점이 될 것이다. 그동안 케이블 액세스 활성화는 방송법에 규정되어 있는 조항과 프로그램 지원금 지급 제도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방송발전기금 중 시청자 단체 지원에서 각 단체별 미디어교육 사업, 기획사업 등에 지원을 하고 있다. 최근에 방송위원회 후원으로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2004 케이블TV 디지털 영상축제’3) 를 통해 시청자제작프로그램 육성을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지원들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기 보다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이벤트 중심의 사업들의 기획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에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활발히 운영될 수 있는 지역케이블 액세스의 장기적 발전계획의 일환으로 케이블 액세스 활성화를 위한 시범사업(Pilot-Cable Access-Project)을 제안한다. 캐나다의 ‘변화를 위한 도전’프로젝트는 10여년 간의 오랜 지원을 통해 캐나다 퍼블릭 액세스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미국 또한 케이블 TV의 지원과 민간재단들의 지원을 통해 뉴욕의 액세스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퍼블릭 액세스가 제도화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케이블 액세스 활성화를 위한 시범사업(Pilot-Cable Access-Project)은 미디어센터와 같은 물리적 하부 구조가 없는 지역들을 대상으로 케이블 액세스를 위한 지원체계를 확립하고, 지역 공동체의 참여를 위한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역케이블 방송사의 장비 및 공간을 이용한 제작을 활성화시키고, 케이블 TV 지역채널에 액세스 방송 시간을 정기적으로 확보하여, 지역공동체 방송으로서 퍼블릭 액세스가 정착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선, 이 시범 사업의 주체는 방송위원회-지역케이블방송사-지역공동체구성원이다.
방송위원회는 시범사업의 큰 틀을 마련하고, 지원 규모 및 지원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 이 시범 사업의 재원은 방송발전기금 및 지역 케이블방송사의 추가이익 환수금4)이 포함된다. 시범사업을 공모를 통해 선정한다.
지역케이블방송사는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스튜디오와 제작 장비, 편집실을 제공한다. 지역채널 중 일부 시간을 퍼블릭 액세스 방송에 제공한다.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지역케이블방송사의 재허가 때 시청자참여지수를 반영한다.
가장 중요한 주체는 지역공동체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비영리적 단체이다. 시범사업이 특정 단체의 사업으로 제한되지 않기 위해서 지역비영리 단체 및 개인들로 이루어진 비영리공동체기구에 의해 운영한다. 퍼블릭 액세스 채널 운영 방향, 지역공동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교육, 지역의 소외된 계층이나 비영리 단체 지원 프로그램, 아웃리치 프로그램들을 기획한다.

이 시범사업은 단기적 사업이 아니며 최소한 3년의 지속적인 지원과 활동이 필요한 사업이다. 이 시범사업을 통해서 한국의 퍼블릭 액세스 모델을 개발하고, 제도적 문제들을 보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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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송사 허가(license)란 국가 혹은 공공기관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에게 방송 주파수에 대한 독점적,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하는 행위이다.

2) 이와 비슷한 상황이 우리 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바로 위성방송과 케이블 방송 사이에 있는 갈등이다. 위성방송의 지상파방송 재송신 문제를 두고 위성방송과 케이블 및 지역방송사간의 다툼에서 문제의 본질은 위성방송사업자와 지역방송사업자 사이의 시장을 둔 경쟁이겠지만, 이 과정에서 지역방송사업자들은 ‘지역방송 살리기’, ‘방송의 공공성(지역성) 강화’를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단지 방송사업자들의 힘겨루기로 방관하기 보다시민사회단체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실제로 지역방송의 지역성, 공공성 강화 방책을 마련하게 해야 할 것이다.

3) “21세기 디지털 영상문화를 선도해 나갈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서는 `2004 케이블TV 디지털 영상축제`를 개최한다. 본 축제기간 중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유소재로 시청자가 제작한 디지털 영상작품을 공모하여 디지털영상 콘텐츠 산업을 육성하고 선정된 우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하여 지역채널을 통해 방송함으로서 지역사회의 문화적 욕구 충족 및 시청자 제작프로그램의 방송 참여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방송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영상문화에 대한 저변을 확대하고자 한다.” , ‘2004 케이블TV 디지털 영상축제’ 안내
http://www.kcta.or.kr/infor/infor_01_02.asp?br_no=01&idx=3002

4) 이는 아직 확정적이지 않으며, 지역케이블 방송사업자의 추가수익금 환수를 통한 지역 퍼블릭 액세스 재원 마련에 대한 후속 연구 이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